인공지능(AI)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관련주가 기록적인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이 과열됐단 경고도 나오지만 월가에서는 AI 투자 확대와 실적 개선을 근거로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1일(현지시간) AI 열풍이 반도체 주가 랠리로 이어지면서 역대급 상승장이 펼쳐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우존스 자료에 따르면 뉴욕증시 벤치마크인 S&P500지수는 반도체 관련주 랠리에 힘입어 4~5월에만 16% 급등했다. 두 달 새 이 정도의 상승세는 1950년 이후 단 네 차례밖에 없었던 기록이다. 게다가 과거 네 차례 모두 S&P500 지수는 6개월 동안 추가 상승했으며 추가 상승률 중간값은 17%였다.
올들어 반도체주 급등세는 세계적이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시총은 1년 새 약 10배 늘어 1조달러를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약 465% 상승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연간 첫 100거래일 기준 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닷컴 버블 주역들도 다시 시장의 중심에 섰다. 인텔은 올해 들어 주가가 3배 가까이 뛰며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스코시스템즈와 퀄컴도 각각 50% 안팎으로 올랐다.
일각선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지만 월가는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S&P500 연말 목표치를 기존 7600에서 8000으로 올려 잡았다. 연말까지 추가로 5.5% 상승할 수 있단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랠리가 단순한 투기와 다르다고 평가한다.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 타니어스 노던트러스트자산운용 북미 최고투자전략가(CIO)는 "AI 열차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이를 막거나 시장 밖에 머무르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AI 투자 열풍은 2022년 말 챗GPT 등장 이후 이어져 왔지만 올해 들어 더욱 강해졌다. 특히 AI 모델의 코딩 능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AI가 생산성을 향상시킬 거란 기업들의 믿음도 확고해졌다.
AI 기업들의 수익성에 대한 우려도 완화되고 있다. 올해 상장을 계획 중인 앤트로픽의 경우 기업용 코딩 도구 판매 확대에 힘입어 올해 2분기 폭발적인 매출 성장과 첫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최근 투자유치 라운드에선 기업가치가 9650억달러(1455조원)로 평가되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스타트업에 등극했다.
케빈 시어 BNY웰스 수석 주식전략가는 "우리는 AI 시대의 가속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면서 "대형언어모델(LLM) 기업들의 매출 성장 속도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변수로 인플레이션을 꼽는다. 이란 전쟁에 따른 원유 공급 차질과 AI 관련 반도체 가격 급등이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이나 학자금 대출 같은 거의 모든 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국채 금리가 오르면 경제 성장 속도가 둔화될 수 있다. 또한 금리가 오르면 채권의 투자 매력도가 올라가 위험자산인 주식에서 채권으로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도 커진다.
미국 투자자문사 에드워존스의 안젤로 쿠르카파스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물가 상승이 지속돼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10년물 국채 금리가 다시 5%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며 "이는 시장에 혼란이나 변동성을 주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투자자들은 당분간 주가 상승세가 이어진다는 데 베팅하는 모습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최근 조사에서 펀드매니저들의 현금 보유 비중은 2024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고 주식 비중은 통상적인 배분 기준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미국 자산운용사 글렌미드의 제이슨 프라이드 투자 전략 책임자는 지난 2달간 주가 상승세 중 75~80%는 "펀더멘탈에 기인한 것"이라면서 그 배경으로 이란 전쟁 해결에 대한 기대감, 기술 기업들의 호실적을 꼽았다. 그는 지금과 같은 고속 상승세는 한풀 꺾일 수 있다면서도 주가가 계속 오를 거라고 볼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