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푸둥신구에 위치한 장장과학성. 높이 300m가 넘는 초고층 쌍둥이 빌딩 '장장 과학의 문'을 중심으로 로봇과 AI(인공지능), 반도체 기업들이 입주한 건물들이 빼곡하다.
상하이는 명실공히 중국 로봇 산업의 '용광로'다. 로봇의 손과 관절, 모터 등 부품 제조는 물론 이들 부품을 모아 궁극의 로봇 기술 격인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기업이 상하이 권역에 밀집해 있다. 이곳에 본사를 둔 애지봇이 대표적이다. 애지봇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과 제조는 물론 AI와의 융합까지 수행하는 '상하이 식' 기업이다.
상하이가 용광로라면 베이징은 컨트롤타워다. 베이징에 연구소들이 집중 분포하고 여기서 표준이 태어난다. 또다른 산업도시 선전에선 로봇의 눈과 심장, 신경망이 빚어진다. 휴머노이드의 핵심 부품, 센서 등이다. 중국은 이처럼 베이징-상하이-선전의 거대한 삼각형을 기반으로 '차이나로보틱스'라는 세계최대 로봇시장을 일구고 있다.
애지봇은 2020년 화웨이 '천재소년 프로젝트'에 선발된 펑즈후이가 2023년 설립했다. 로봇 스스로 실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구현지능(Embodied Intelligence)'이 강점이다.
상하이와 함께 장강 삼각주 경제권을 형성하는 도시가 항저우다. 이곳에 자리한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유니트리도 상하이식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상하이대 대학원에서 로봇·기계설계를 연구하던 왕싱싱(1990년생)이 창업했다. '기술 우위'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격 파괴'를 주도한다. 2023년 'H1'을 65만위안(약 1억4000만원)에 출시한 왕 CEO는 보급형 'R1'을 내놓으며 가격을 4만위안(870만원)으로 떨어뜨렸다.
이 밖에 휴머노이드 관절 모듈 기업인 Ti5 로봇, 휴머노이드용 특수 케이블 제조사 저장삼과선람, 대형언어모델을 개발하는 미니맥스 등이 상하이 권역을 중심으로 생산과 연구개발을 전개한다. 로봇의 몸체, 뼈대, 두뇌 즉 AI가 하나의 권역에서 융합하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베이징 남동부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에는 국가·지방 공동 휴머노이드 혁신센터가 들어서 있다. 국가급 휴머노이드 연구 플랫폼으로 공통 기술 개발과 AI·구현지능 연구, 산업 표준 수립 등을 수행한다. 이들은 로봇 산업의 공동 연구소이자 표준 제정기관 역할을 한다.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하프마라톤과 로봇 올림픽 등 실증 행사 역시 이곳을 중심으로 열린다. 휴머노이드 성능을 검증하는 국가 차원의 테스트베드다.
베이징이 방향을 정하고 상하이가 로봇을 빚어낸다면 선전은 로봇의 눈과 심장, 신경망을 공급한다. 배터리, 센서, 전자부품 공급망이 집중됐다. 선전에 본사를 둔 로보센스는 중국 최대 라이다 기업으로 자율주행용 센서를 공급한다. 배터리 기술력을 축적한 BYD와 로봇의 신경망 역할을 하는 통신·클라우드·AI 인프라 기술 주도기업 화웨이도 선전에 거점을 두고 있다.
베이징·상하이·선전 삼각 클러스터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든 산업단지가 아니다. 해당 지역에서 AI, 제조, 전자 산업이 오랜 기간 축적된 결과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칭화대와 베이징대는 물론 바이두, 바이트댄스 등의 본사가 위치한 베이징은 중국 최대 AI 거점이었다. 상하이엔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용 로봇 기업이 밀집해 있었고 선전은 센서, 배터리, 전자 기업의 중심지였다. 이들 기업들이 휴머노이드 생태계의 핵심 뼈대로 진화해나갔다.
이렇게 형성된 기반 위에 정부는 정책 지원을 추진하며 삼각 클러스터를 키워나간다. 정부는 2016년 중국을 세계 최대 로봇시장으로 육성시키기 위한 청사진인 '로봇산업 발전계획(2016~2020년)'을 내놨다. 첫 국가급 로봇 육성계획이었다. 2021년 두 번째 '로봇산업 발전계획(2021~2024)'을 통해 로봇 핵심 부품의 국산화를 추진했다. 2023년엔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 발전 지침'을 내고 각 지역별 생태계에 특화된 휴머노이드 산업 육성에 나섰다.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을 근거로 2025년 베이징, 상하이, 선전은 각 지역에 특화된 휴머노이드 육성 정책을 내놨다. 베이징은 대모델, 소뇌기술, 전신제어 등 원천기술 실증 드라이브를 걸었다. 상하이는 2027년까지 100개 핵심기업 집적 목표를 제시했다. 선전은 전자피부, 촉각센서, 경량 배터리 관련 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6년부터 로봇을 국가 핵심 먹거리로 낙점하고 정책을 일관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셈이다.
중국정부가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명확하다. 천문학적 성장이 예견된 시장에서 주도권까지 가져오기 위해서다. 모간스탠리는 보고서를 통해 2050년까지 전 세계 연간 휴머노이드 산업규모가 5조달러(약 757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가 지원이 가장 강력한 중국이 글로벌 휴머노이드 산업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상하이에선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산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상하이자동차는 최근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사인 상하이GM의 상하이 금교 공장에 애지봇이 생산한 'A2-W'를 배치했다. A2-W는 배터리 생산 라인에서 전지를 옮기고 적재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한다.
한편 중국은 로봇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선전시에서 환경미화 로봇 발주를 낼 때 로봇 1대 투입시 환경미화원 3~5명을 줄이는 효과를 낼 것을 요구한다. 선전시의 환경미화 노동자 1명의 연평균 인건비는 약 7만위안(1500만원), 3명이면 21만위안(4500만원)이다. 그만한 비용을 아낄 수 있어야 로봇 1대를 투입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