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역사상 126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강진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 전략을 뒤흔들 '대형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로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통제하에 두고 전략적·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보호국 구상' 실현이 지연되고,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구호 비용을 떠안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할 거란 얘기다.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지진) 재난은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 '강제 동맹' 관계를 시험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베네수엘라를 경제적 보호국으로 길들이려던 미국의 계획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작전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을 축출하고, 당시 부통령이던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을 앞세워 베네수엘라를 친미 정부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그는 경제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며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를 미국 중심의 경제권으로 편입시키는 데 주력했다.
실제 미국은 마두로 축출 이후 베네수엘라의 석유·금 수익 흐름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며 영향력을 극대화해 왔다. 로드리게스는 마두로 축출 이후 '친미' 성향으로 변신, 석유 부문 민영화를 촉진하는 석유 개혁법에 서명해 외국(특히 미국) 기업의 에너지 투자를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이에 미국은 제재 완화 등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24일 규모 7.2와 7.5 강진이 연이어 베네수엘라를 강타하면서 미국의 이런 구상에 차질이 생겼다. 이번 지진으로 베네수엘라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미국식 경제 개혁'에서 '재난 수습'으로 강제 전환된 것. 사상자가 수천 명에 달하고, 건물 수십 채 붕괴 등 주요 도시가 초토화된 상황에서 강압적인 시장 개방이나 자원 확보는 추진 동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대금을 직접 관리하고 구축한 금융 시스템이 오히려 미국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 금융시스템 구축으로 당장 지진 복구에 쓸 자금의 집행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재건 비용을 책임져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 미국이 베네수엘라 자원으로 이익을 챙기려다 대규모 구호 자금과 재건 비용을 추가 지출해야 하는 정치적·비용적 부담을 안게 된 셈이다.
로드리게스의 지지율 약세도 미국에 골칫거리다. NYT에 따르면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경제 정책 불만 등을 이유로 지난달(25%)까지 3개월 연속 추락했고, 이번 지진으로 추락 하락이 예상된다. NYT는 "지난 1분기 베네수엘라 경제 성장률은 2021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지진까지 덮치면서 민심의 분노가 한층 커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한편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긴급 구조대 파견과 국방부 지원을 발표하며 제재 면제 조치에 따라 구호 거래가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NYT는 베네수엘라 관계자를 인용해 "서방 금융기관들이 미국의 제재를 의식, 베네수엘라 관련 송금을 관행적으로 지연·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