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유층 부모들이 육아를 대신 맡아줄 '가사도우미 팀'을 고용하는데 연 수억원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 보도에 따르면 미국 샌디에이고에 사는 두 아이 엄마 크리스틴 랜디스는 가사도우미 팀 운영에 연 25만달러(3억7000만원)를 쓴다. 집에서 생활을 함께하는 입주 도우미와 주말 유모, 개인 요리사 등으로 꾸린 팀이다.
핀테크 기업 CEO(최고경영자) 출신인 랜디스는 아이 발톱 깎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유모가 한다. 목욕도 대부분 가사도우미가 시킨다. 같은 책을 다섯 번 읽어주거나 아이가 문을 여닫는 걸 45분간 지켜보는 '반복 놀이'도 가사도우미 몫이다. 성인용품 기업 CEO인 세 아이 엄마 알렉산드라 파인도 유모·정리 전문가·수리기사 등 7명에게 연 8만5000달러(1억2500만원)를 쓴다.
고용된 도우미들의 업무는 다양하다. 한 인력업체는 승마대회에 동행하는 '승마 유모', 아기 이유식만 만드는 '베이비 셰프', 어린이 전담 스타일리스트를 연결해줬다. 최근에는 한정판 인형 '라부부'를 구해달라는 부모의 요청에 유모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져 물건을 찾아내는 일을 맡았다. 기저귀 없이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위해 아기의 배변 신호를 읽고 화장실로 데려가는 일을 맡은 경우도 있다.
아기 배변훈련을 전담하는 도우미는 보통 수일동안 600~4500달러(90만~670만원), 자전거 타기 개인 교습은 회당 80~450달러(11만~67만원)를 받는다. 여름캠프 짐싸기 대행은 시간당 125달러(18만원)다. 가족여행에 동행하며 육아를 전담하는 유모는 연봉 12만~17만달러(1억7000만~2억5000만달러), 학업과 인성 교육을 함께 맡는 가정교사는 20만달러(3억원) 정도의 보수를 받는다. 글로벌 컨시어지 업체 퀸테센셜리는 연 2만5000달러(3700만원)부터 시작하는 가입료를 내면 유치원 입학 지원, 가족 안식년 등 가사를 대신해준다.
부유층 부모들이 거액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시간 절약 때문. 자잘한 집안일은 가사도우미에게 맡겨두고 아이와 더 알찬 시간을 보내겠다는 것. 인력업체 하우스홀드 스태핑의 올리비아 파운틴 운영이사는 "생일 선물 포장, 가방 정리, 택배 상자 분해 같은 수백만 가지 사소한 일들이 하루를 사라지게 만든다"고 했다.
킴 카다시안의 속옷 브랜드 스킴스의 공동창업자 에마 그레데가 이런 육아 방식을 퍼뜨린 인물로 꼽힌다. 네 아이 엄마인 그는 스스로를 주말 오전만 아이들과 보내는 '최대 3시간 엄마'라고 부른다. 그레데는 유모·청소부·셰프·비서실장으로 꾸린 팀 덕분에 아이들과 휴가 같은 추억 만들기에 시간을 쓸 수 있다며 "샌드위치를 별 모양으로 자르는 일은 내 몫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잡무를 도움받아 아이들과 정말 중요한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건 육아 떠넘기기가 아니라 시간을 배분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부유층을 대상으로한 가사도우미 서비스 시장은 빠르게 크고 있다. 인력업체 하우스홀드 스태핑은 집안일과 육아를 겸하는 '패밀리 어시스턴트' 수요가 최근 몇 년 사이 가파르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1962년 설립된 기업 파빌리온 에이전시는 주택 5~10개를 두고 옮겨 다니는 가정을 위해 주택마다 전담 도우미들을 배치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만일을 대비해 헬리콥터를 탈 수 있는 가사도우미도 알선 가능하다고 한다. 세스 노먼 그린버그 파빌리온 에이전시 부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경제가 백만장자, 억만장자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가사도우미, 유모들이 부모 자리를 대신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랜디스도 아이가 유모에게 처음 "사랑해"라고 말하는 걸 듣고 흔들린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엄마 역할은 따로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랜디스는 "내 아이가 나를 엄마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우리의 유대와 사랑은 대체 불가능하다"며 하루 이야기를 나누고 침대에서 포옹하고 책 읽는 시간만큼은 자신이 채워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사) 업무를 넘겨도 생각은 여전히 내 몫"이라고 덧붙였다. 가사 도우미는 돕기만 할 뿐, 최종 결정은 여전히 자신이 해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