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결렬된 후 교착 상태를 타개할 방안으로 해협을 이란과 걸프만 국가가 공동 관리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19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부르스 앤 바자르 재단은 이란을 포함한 걸프만 8개 국가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수수료를 공동 징수하는 타협 모델을 제시했다.
해당 모델의 전제는 걸프만을 일종의 공유 영토, 즉 지역 공공재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특히 유조선에 대해서만 해수 유지 관리비 명목으로 수수료를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재단은 이를 통해 이란의 통제력 강화 요구를 충족시키면서도 걸프만 국가 모두가 평화 유지에 관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모델은 2차 세계 대전 후 유럽에서 석탄과 철강의 공동 생산을 도모했던 조약을 기반으로 한다. 현재는 폐지된 상태다.
재단은 현재 걸프만의 상황이 제2차 세계대전 말 유럽과 유사하다는 판단에서 해당 모델을 착안했다. 당시 로베르 슈만 프랑스 외무장관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을 고립시키는 대신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CSC) 조약을 맺고 무기의 핵심 구성 요소인 석탄과 철강을 독일과 함께 생산했다.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이 합류하면서 유럽연합(EU)에 통합됐다.
재단은 제벨 알리항 등 걸프만 항구들이 이미 시설을 이용하는 선박에 요금을 부과하고 있으므로 걸프만 국가들에게 수익을 나누는 모델이 생소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걸프만을 통해 거래되는 수출품목 규모를 고려하는 운송업체들의 수수료 저항도 적을 것이라고 봤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연간 석유 수출액은 약 6000억달러로 거래 규모에 비해 수수료는 큰 부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걸프만 국가들 간의 상반된 정치적 이해관계와 역사적 맥락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개 걸프 국가는 이미 걸프 협력회의(GCC)라는 기구에 속해 있다. NYT는 "상업화 같은 문제에 대한 집단적 지침을 마련할 때는 협조적이지만 공동의 정치 행동을 할 때는 분열하기로 악명높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이란의 동참 여부가 주목된다. 우선 이란 국영 IRNA통신은 지난 10일 재단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물동량 및 에너지 수송로가 아니라 지역 협력의 기회"라며 "해협이 적절히 관리된다면 그 경제·재정적 이익은 지역 국가 사이에 더욱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판단은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항 선박에 20% 수수료를 물리겠다고 공언했다가 걸프만 국가들의 반발에 철회하고, 대신 걸프국의 대미 투자로 대체하겠다고 밝히는 등 입장을 번복한 바 있다. 라이언 크로커 전 미 대사는 "현재 주요 장애물 중 하나가 명확한 미국 정책 목표의 부재"라며 "걸프 국가들은 일방적이거나 집단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기 전에 이런 장기적인 미국의 보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