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이례적으로 엔화 하락을 막기 위해 공동 시장 개입에 나선 것은 엔저가 지속될 경우 일본 경제를 넘어 미국 금융시장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주 미일 양국의 공동 개입은 엔/달러 환율이 164엔 안팎까지 오르며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4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가운데 나왔다. 미국과 일본이 환시에 공동 개입한 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15년 만이다. 당시엔 엔화 가치를 낮추기 위해 엔화를 매도했다. 엔화 매수를 통한 시장 개입으로 치면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관측통들은 일본 정부가 30일 약 8조4500억엔(약 77조원)을 투입해 엔화를 지지한 뒤 31일 다시 시장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양국이 구체적으로 얼마를 투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가 공조에 나선 배경엔 일본이 엔화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를 매각할 경우 미국 국채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단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국채 금리는 반대로 올라간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시중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게 위험 요인이다.
안 그래도 최근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미국의 재정지출 확대와 인플레이션 우려로 약 19년 만에 최고 수준을 찍으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터다.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이 국채를 팔지 않고 엔화 방어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시장 안정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베선트 장관과 일본 재무부는 향후 환시 개입 도구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FIMA 레포' 제도를 언급했다. FIMA 레포 제도는 외국 중앙은행이 미 국채를 담보로 맡기면 달러를 빌릴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반드시 미 국채 대량 매각이 필요한 건 아니란 메시지를 시장에 발신한 셈이다.
스테이트스트리트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마사히코 루 선임 채권 전략가는 'FIMA 레포' 제도 언급을 두고 "이미 활용 가능한 수단으로 시장에 강한 신호를 보내고 투입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엔화 하락을 막으려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역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달러가 미국 제조업과 일자리를 훼손하고 엔화 약세가 일본 수출기업에 사실상 보조금처럼 작용한다고 비판해왔다. 엔화 약세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효과를 약화시킨단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일본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관세 부과에 따른 가격 인상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
일본 정부 역시 과도한 엔저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것으로 우려해왔다. 일본은 올해 4월 말과 5월 초에 단독으로 시장에 개입했지만 엔화는 일시적으로 반등하는 데 그쳤다. 일본은행이 6월 기준금리를 1%까지 인상했음에도 엔화를 떠받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시장은 추가 개입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노무라증권의 고토 유지로 수석 외환 애널리스트는 "당국의 의지가 강하다"면서 "엔/달러 환율이 155엔 아래로 내려가면 개입이 멈출 수 있지만 엔화 약세 압력이 여전하다면 개입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전문가들은 엔화가 강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본은행의 추가 긴축, 일본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 회복 같은 펀더멘털 요인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본다. 이스트스프링 인베스트먼트의 롱 렌 고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미국의 공조는 엔화 안정화 노력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면서 "하지만 미국의 추가 개입 조건이 무엇인지, 이번 조치가 일회성 대응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엔화 약세는 일본의 통화 및 재정 정책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는 만큼 시장 개입만으론 엔화의 지속적 반등을 이끌어내긴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