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키맨]위기의 SA 자산 인수한 시타델 창업자
위기에 빠진 헤지펀드가 마지막 버팀목을 찾을 때마다 뭉칫돈을 들고 나타나는 월가의 승부사가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인 시타델을 이끄는 켄 그리핀(57)이다.
최근 뉴욕증시를 강타한 인공지능(AI) 기술주 폭락장에서도 그의 플레이북이 작동했다. 붕괴 위기에 몰린 경쟁 헤지펀드의 포트폴리오를 전격 인수하면서다. 그리핀이 위기에 빠진 펀드 자산을 헐값에 통째 인수하는 게 처음이 아니다. 시장의 패닉을 진정시키는 유동성 공급자이면서 위기를 틈타 우량자산을 얻고야 마는 사냥꾼 면모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는 평가다.

지난 30일(현지시간) 시타델은 AI 기술주에 투자했다가 AI 거품론과 무차별 투매로 인해 강제 청산 위기에 몰린 캘리포니아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A)의 포트폴리오 자산을 대거 사들였다.
SA는 지난달 AI 관련 보유종목 주가가 67% 폭락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펀드가 보유하던 160억달러(약 22조8000억원) 규모의 포트폴리오는 마진콜 압박을 받으며 강제 청산될 위기에 처했다. SA를 세운 레오폴드 아셴브레너는 투자자 서한에서 "여러분을 실망시켜 죄송하다"며 실패를 인정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그리핀은 이 소식을 접한 뒤 즉각 시타델 핵심 경영진을 소집했다. 그는 파블로 살라메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 제럴드 비슨 최고운영책임자(COO), 페리 바이스 지분 퀀트 연구 책임자, 숀 페이건 최고법률책임자(CLO) 등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의 투자 자산 목록과 규모, 유동성을 샅샅이 분석했다.
이후 그리핀은 29일 아침 아셴브레너와 직접 통화했고 이튿날인 30일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의 포트폴리오 자산을 인수하는 거래를 체결했다. 자칫 시장에 쏟아질 뻔한 대규모 매도 물량을 시타델이 받아간 것이다. 한 투자 전문가는 "월가에서 이 정도 규모의 리스크를 한 번에 감당할 수 있는 회사는 손에 꼽힌다"고 말했다. 시타델이 물량을 받아낸 이후 많은 AI 종목들이 반등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시장이 극단적인 압박 아래 있을 때 기회를 찾는 건 그리핀이 약 40년에 걸쳐 갈고 닦은 '플레이북'으로 통한다. 그리핀은 2023년 투자자 서한을 통해 "시장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할 때 우리는 단순한 손절 전략에 의존하는 다른 투자자들과 달리 철저한 위험 관리와 집단적 판단으로 시장의 위기를 자본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남들이 공포에 빠져 자산을 팔 때 정확하게 위험을 계산한 뒤 싸게 사들인다는 설명이다.
2001년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이 당시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을 신청하자 그리핀은 당일 전용기로 시타델 경영진들을 현지로 보냈다. 엔론에 몸담고 있던 에너지 트레이더와 애널리스트들을 대거 영입했다. 이들은 오늘날까지 시타델의 원자재 투자 사업 성장을 주도했단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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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006년 그리핀은 천연가스 매수 포지션에 올인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낸 헤지펀드 아마란스 어드바이저스의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통째로 헐값에 인수했다. 이듬해인 2007년 30억달러 규모의 헤지펀드 소우드 캐피탈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신용 시장이 흔들리며 파산 위기에 몰리자 그리핀이 등판해 포트폴리오 대부분을 인수했다. 당시 시타델이 소우드 캐피탈의 포트폴리오를 넘겨받은 덕에 시장은 잠시 연쇄 강제 청산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21년 개미 투자자들이 게임스톱 주가를 띄우며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들과 맞섰을 때 멜빈 캐피탈이 파산 위기에 몰렸다. 그리핀은 월가 거물 스티브 코헨과 함께 멜빈 캐피탈에 27억5000만달러를 긴급 수혈하며 구원 투수로 나섰다.
그리핀은 1968년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뒤 1990년 시카고에서 헤지펀드 시타델을 설립해 약 710억달러 자산을 굴리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2002년엔 시장조성 업체 시타델 증권도 설립했다. 시타델 증권을 직접 경영하지는 않지만 지분 75% 이상을 소유하고 비상임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두 번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리핀의 개인자산은 약 575억달러로 집계된다. 세계 34위다. 기부 큰손으로도 유명하다. 의료 연구에서 교육 기관 등에 25억달러 넘게 기부한 것으로 알려지며, 모교인 하버드대에 5억달러 넘게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가 2024년 약 4500만달러에 구입한 스테고사우루스 화석 에이펙스는 현재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대여돼 전시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지지성향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 안보, 규제 완화, 감세 정책도 긍정 평가한다. 단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나 트럼프 일가와 연관된 정책 등에 대해선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