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주 등락에 지친 돈, 유럽증시로 '피난'

정혜인 기자
2026.08.11 04:01

스톡스유럽600 5거래일 연속↑… 타 유럽지수도 반등
은행권 기업실적 호조·글로벌 자금유입… 시장 재평가

스톡스유럽600지수 변동 추이/그래픽=이지혜

최근 변동성이 큰 반도체 등 기술주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현상은 해외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흐름 속에 심상치 않은 상승세를 보이는 곳 중 하나가 유럽증시다. 그간 AI(인공지능) 열풍에서 소외된 곳이지만 은행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좋게 나오고 기술주의 대안투자처로 주목받으면서 투자자가 몰린다는 분석이다.

범유럽 지수인 스톡스유럽600은 지난주(7일 종가 기준) 660.25로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5거래일 연속 상승하면서 동시에 나흘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독일의 DAX지수, 영국의 FTSE100지수, 프랑스의 CAC40지수, 스페인의 IBEX35지수 등 유럽 내 다른 주요 지수도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거래됐다.

유럽기업들의 실적호조와 글로벌 투자자금 유입이 지수상승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 집계기준 유럽기업들의 올해 2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충격에서 회복하던 2022년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UBS글로벌자산운용의 마크 헤펠레 CIO(최고투자책임자)는 "이번 분기 기업들의 실적이 시장 예상치를 웃돌 가능성이 큰 만큼 유럽주식을 다시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투자비중을 확대할 시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적호조가 가장 두드러진 부문은 은행이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거래수익이 늘어난 데다 고금리 환경의 수혜까지 겹치면서 실적이 증가했다. 프랑스 BNP파리바의 2분기 순이익은 3분의1가량 늘었고 스위스 UBS는 17% 증가로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유럽의 주요 은행종목으로 구성된 스톡스은행지수는 올해 21% 이상 오르며 스톡스유럽600의 상승률(11.5%)을 넘어섰다.

모간스탠리의 마리나 자볼록 유럽주식전략가는 "유럽기업들의 강한 실적이 유럽주식에 대한 투자자들의 '분산투자 수요'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글로벌 기술주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던 투자자들이 기업들의 실적호조를 확인하고 유럽증시로 눈을 돌렸다는 얘기다.

유럽증시엔 상대적으로 AI 열풍과 거리가 있는 은행·산업재·에너지·소비재기업이 다수 포진했다. 여기에 중동정세 완화로 국제유가가 고점 대비 내려오면서 유럽 내 인플레이션 우려가 줄어든 점도 투자심리 개선에 힘을 보탰다.

블랙록은 지난 7월 자사 유럽주식 상품에 총 44억달러(약 6조2264억원)가 유입됐다며 "변동성이 큰 반도체 종목에서 자금을 빼 유럽으로 옮긴 역모멘텀 자금배분의 증거"라고 설명했다. 씨티그룹의 베아타 만테이 유럽주식전략책임자는 "AI 관련주가 다시 상승세를 타더라도 투자자들은 기술주에 남아 있는 변동성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에선 실적개선세가 유지된다면 유럽증시에 대한 재평가도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바클레이즈의 에마뉘엘 마콩가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유럽에 대한 관심은 은행주를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유지된다"면서도 "단순한 투자 다변화를 넘어 유럽증시 전반의 강세를 뒷받침할 펀더멘털이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투자자들이 유럽시장에 다시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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