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와 자본의 수도권 밀집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여러 나라가 겪는 과제다. 우리나라가 수도권 과밀 해소를 위해 세종 행정수도를 키우듯 세계 곳곳에서 '수도 이전'이 화두다. 인구 집중 완화, 권력 분산, 재난 대비 등 이유도 제각각이다. 수도 분산시 의사결정의 효율성, 수도 이전시 유령도시 우려 등이 제기되며 나라별로 논란도 적잖다.
일본은 도쿄에 대형 재난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두번째 수도를 물색하고 있다. 일본 참의원은 지난달 24일 '제2의 수도'를 건설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자연재해로 도쿄의 기능이 마비되더라도 정부가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취지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30년 안에 도쿄 수도권에서 규모 7 이상의 큰 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70%로 추산했다.
지나친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려는 목적도 있다. 지난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수도권 집중도는 2023년 기준 27%다. 한국(43.3%)보다 낮지만 같은 해 영국(14.9%), 프랑스(14.1%), 독일(4.2%) 등 주요국보다 높다. 높은 집값을 감수하고라도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추세다.
29일 현재까지 삿포로·나고야시와 후쿠오카·아이치·히로시마현, 홋카이도 등이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력 후보는 오사카다. 일본에서 두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지녔으며 철도와 공항 등 기존 인프라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오사카에서 기업과 인력이 빠르게 유출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교토 경제연구소의 모리 토모야 교수는 "AI(인공지능) 확산으로 여러 사업장을 지닐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며 "(기업활동이) 필연적으로 도쿄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논란 여지도 있다. 정부 계획이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의 연정 파트너이자 오사카에 본거지를 둔 일본혁신당(JIP)에게 유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은 1963년 플레밍 보고서(Fleming Report)를 기점으로 일찍이 탈런던화를 추진해왔다.
영국 보수당 정부가 만든 플레밍 위원회가 발표한 이 보고서는 수도권 과열을 막고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선 행정 인력 분산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60년 넘게 영국의 지역 분권 정책을 떠받친 핵심 이정표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는 총리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6월 29일 그레이터맨체스터주에 제2총리실, 이른바 '북부 10번지(No 10 North)'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공무원 인력만 지방으로 보내던 방식에서 탈피해 정책 결정권자 스스로 지역에서도 일하겠다는 구상이다. 런던 총리 관저는 '다우닝가 10번지'에 있고 북부 10번지는 북쪽에 새로운 총리관저라는 뜻이다. 버넘 총리는 취임 직후인 지난달 24일 맨체스터 헤런하우스에 제2총리실을 개소해 공약을 실행했다.
현지 주민과 전문가는 균형 발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지방 도시가 직면할 현실적인 부작용을 경계한다. 맨체스터주 위건에 사는 레베카 마일스(67)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정치가 지나치게 런던 중심적이어서 북부는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다"며 지역 격차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그레이엄 노우드(69) 부동산 전문기자는 "인구 유입과 편의시설 확충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집값이 오르는 부작용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호 및 보안 통제에 따른 도심 교통 혼잡, 런던 관료 조직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의사결정 효율성 저하 등도 북부의 제2 총리실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인도네시아는 수도권 과밀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천도(遷都)를 추진 중이다. 조코 위도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19년 동칼리만탄을 신수도 부지로 결정했고, 2022년 '누산타라'로 명칭을 확정했다.
당초 2024년 8월 독립기념일에 천도를 단행하려 했으나 기반시설 부족 등으로 공식 선언은 미뤄졌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현 대통령은 2028년까지 신수도 핵심 정부 구역을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인도네시아가 수도 이전을 단행하는 주된 이유는 기후변화와 인구 과밀이다. 수도인 자카르타는 지하수 개발과 해수면 상승이 맞물려 매년 최대 25cm 지반이 침하한다. 전 세계 대도시 중 가장 빠른 속도다. 여기에 인구 집중으로 인한 교통 체증, 환경 오염이 심화됐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재정 난항과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신수도가 '유령 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안 윌슨 호주 머독대 국제정치·안보학 선임강사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프라보워 신임 정부가 다른 정치적 우선순위를 둘 경우, 누산타라는 막대한 재정을 갉아먹는 '하얀 코끼리(돈만 들고 처치 곤란한 유산)'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천도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인 바수키 하디물요노 IKN청장은 NPR을 통해 "진행이 더디다는 이유로 유령 도시가 될 것이라 보는 시선은 불공정하다"며 "2028년 공식 수도 선언과 함께 대통령 및 핵심 행정 기능이 이전하면 경제 활동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