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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제품을 만들고 처음 눈을 돌리는 해외 시장은 대부분 미국 아니면 일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블록 중 하나인 '중동'은 선택지에 없다. 멀고 낯선 데다 그곳에서 실제로 사업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다.
이 공백을 정면으로 파고든 인물이 있다. 중동 최대 VC(벤처캐피탈)로 꼽히는 쇼룩파트너스(쇼룩)의 한국 총괄이자 관계사 '스프린트'를 이끄는 윤창민 대표다. 그는 투자자인 동시에 K브랜드를 중동에 파는 '상인'으로서의 역할에 뛰어들었다.
쇼룩파트너스는 2017년 한국인 신유근 대표와 마흐무드 아디 대표가 공동 창업한 중동 기반 VC다. UAE(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중심으로 리야드·도하·카이로·서울에 거점을 두고 있으며 AUM(운용자산)은 1조원 이상으로 늘었다.
펀드 라인업도 두텁다. 벤처펀드 3개를 비롯해 아부다비 정부 계열 G42 산하 상장사 프리사이트와 함께 만든 AI(인공지능) 펀드, 카타르투자청(QIA)과 조성한 그로스 펀드, 여기에 크레딧·부동산·스페셜시추에이션 펀드까지 갖췄다.
LP(출자자) 구성도 남다르다.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QIA를 비롯한 중동 국부펀드, 현지 패밀리오피스가 주축이고 한화·카카오도 이름을 올렸다. 윤 대표는 한국에서의 딜 발굴과 밸류크리에이션을 맡고 있다.
홍콩계 사모펀드와 싱가포르 헤지펀드를 거쳐 직접 창업까지 해봤지만 윤 대표에게 투자 업무는 결코 쉽지 않았다. 창업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그냥 하면 되지만 투자는 남의 사업에 주관적 판단을 얹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쇼룩 측에 '떠나겠다'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만류가 아니라 새로운 제안이었다. 한국과 중동을 잇는 사업체를 쇼룩 안에서 직접 만들어보라는 것, 이는 지난해 1월 아부다비와 한국에 동시 설립된 스프린트의 출발점이 됐다.
스프린트는 한국의 우수한 제품을 소싱해 중동 현지에 직접 유통하고 브랜드 빌딩을 전담하는 실행 조직이다. 투자사가 직접 유통 상사를 운영하는 것은 VC 업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행보다.
윤 대표가 사업 모델로 무역업을 고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현금흐름이 빨리 돌고, 기회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중동을 깊이 고려하지 않았고, 중동은 수백 년간 제조업 없이 유럽·미국 제품을 수입만 해온 시장이었다.
중동에서 외국 기업이 제품을 팔려면 라이선스(영업 허가권)가 필요하다. 대기업조차 라이선스를 보유한 벤더를 껴야 하는 구조다. 쇼룩의 LP인 현지 패밀리들이 유통망을 쥐고 있다는 점이 스프린트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
시작은 유아용품이었다. 이후 삼양과 롯데웰푸드, 바프(HBAF)의 판매권을 확보해 바레인·이집트·이라크·오만 등 중동 주요국에 라면과 제과, 견과류를 유통하고 있다.
윤 대표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중동 시장을 잘 챙겨온 것은 아니었다"며 "자료를 찾아보니 수십 년간 대기업들의 중동 매출이 거의 그대로였다. 우리가 이건 훨씬 더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스프린트는 중동 현지 바이어들의 요청으로 K뷰티 브랜드 소싱에 나섰다. 그동안 확보한 브랜드만 65개다. 그런데 1년을 운영해 보니 실제로 팔리는 것은 10개 남짓에 불과했다. 나머지 55개는 아무리 소개해도 바이어가 구매하지 않았다.
윤 대표는 "이유는 분명했다. 메디큐브나 아누아처럼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브랜드만 팔렸다"며 "K뷰티라는 테마만으로는, 한국에서 아무리 잘나가는 브랜드도 현지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1년 만에 확인했다"고 말했다.
유통업 자체의 한계도 체감했다. 마진이 얇고 바이어 의존도가 높아 거래처가 갈아타면 손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유통 물량이 많은 대기업 제품만 남기고, 나머지 인디 브랜드는 다른 모델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에서 쓸 돈을 중동에서 쓰게 하자'는 발상이었다.
그는 "보통 미국 틱톡·인스타그램에서 한 번 터져야 그 파급이 중동까지 흘러오지만 그때까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며 "바로 중동에서 시작하는 것이 경쟁이 덜하고 훨씬 저렴하다는 점을 어필하며 브랜드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스프린트가 브랜드에 제공하는 가치는 브랜드 전략 수립부터 영문·아랍어 자사몰 구축, 아마존과 눈(noon, 현지 이커머스 플랫폼) 입점, 퍼포먼스 마케팅, 콘텐츠 현지화, 인플루언서 시딩(자발적 후기), 물류·재고 관리와 고객 응대까지 다양하다. 월간 리포트도 보낸다.
지난해 12월부터 이러한 방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현재 함께하는 브랜드는 12곳이다. 모두 콜드메일로 접촉해 소싱에 성공했다. '마더케이'를 시작으로 뷰티·유아용품·생활용품 브랜드가 차례로 합류했고 최근 4곳이 추가로 들어왔다.
성과도 가시화되는 중이다. 6개월간 운영한 한 브랜드는 미국에서 집행했을 때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중동에서 더 큰 반응을 얻었다. 팔로워 17만명 인플루언서와 진행한 콘텐츠는 게시 24시간 만에 12만뷰를 기록했다.
윤 대표는 "중동 인플루언서들은 한국 제품을 접한 적이 거의 없는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 시딩이 대부분 무료로 이뤄진다"며 "한국에서 잘나가는 제품을 자기가 먼저 소개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스프린트는 현지에서 파자마 브랜드 '실크앤러브'도 직접 운영한다. 현지 이커머스 문법을 몸으로 익히기 위해 만든 브랜드로, 최근 중동 아마존에서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며 브랜드 운영에 관한 자체적인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
윤 대표가 보는 중동 소비자의 특징은 명확하다. 더운 날씨 탓에 거리 상권이 없어 온라인 아니면 대형 쇼핑몰을 선호한다. 온라인 마케팅을 잘하는 한국 인디 브랜드가 글로벌 대형 브랜드보다 유리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우디의 문화적 변화도 큰 기회다. 그는 "5년 전 리야드에서는 대부분의 여성이 눈만 내놓고 다녔는데 지금은 얼굴을 다 드러낸다"며 "그동안 억눌려 있던 '꾸미기 욕구'가 뷰티 브랜드에 대한 소비로 분출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표는 중동을 '돈 많은 개발도상국'이라고 표현했다. 성분과 효능을 따지는 선진국형 소비자와 달리 '핫하다'고 하면 산다는 것이다. 브랜드 인지도를 만드는 작업이 훨씬 빠르게 통하는 시장이라는 의미다.
그는 수많은 브랜드를 직접 만나는 과정에서 사업성이 뛰어나고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을 발견하면 쇼룩 차원의 투자도 검토한다. 쇼룩이 모태펀드의 출자에 따라 올해 한국에서 반드시 집행해야 하는 자금만 40억원에 달한다.
윤 대표는 스프린트의 유통 모델과 시너지가 날 수 있는 팀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론칭해 연 매출 40억원을 바라보는 더마 뷰티 브랜드 '앱소바이오'의 경우 현재 투자와 함께 중동 유통을 논의 중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한때 가장 큰 기업의 형태가 '상사(무역·상업 활동을 위해 조직된 회사)'였던 이유를 이제는 잘 알게 됐다"며 "어느 나라에서 무엇이 잘되는지, 어디가 얼마에 파는지에 대한 정보를 상사만큼 많이 가진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동은 미국·유럽 못지않은 소비력을 지녔지만 현지에서 제대로 된 전략을 펼치는 기업은 드물다"며 "중동에 가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유통과 브랜드 빌딩을 위한 '게이트웨이'로서 스프린트를 성장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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