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6일. 아버지 명의로 거액의 돈을 빌린 뒤 채무를 갚지 못하자 아버지를 살해하려 한 3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도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아버지 명의의 차용증을 위조해 수십억원의 빚을 떠안게 되자 범행을 계획했고, 차 안과 병원 주차장에서 두 차례 아버지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쳤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아버지는 재판부에 아들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까지 제출했지만 징역 8년은 그대로 유지됐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A씨(34)는 변호사인 아버지 B씨의 사무실 명의를 이용해 지인들에게 돈을 빌렸다. 자신의 채무를 갚기 위해 아버지 사무실 명의의 차용증까지 위조했고, 이렇게 빌린 돈은 약 40억원에 달했다.
A씨는 유흥비와 생활비 등으로 돈을 사용하면서 새로운 돈을 빌려 기존 채무를 갚는 이른바 '돌려막기'를 이어갔다. 결국 더 이상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채무 명의자인 아버지를 살해하면 빚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범행을 계획했다.
A씨는 휴대전화로 '둔기로 내려치면' 등의 문구를 검색하고 범행에 사용할 둔기를 구입해 차량에 보관했다. 막상 범행을 실행할 엄두가 나지 않자 신경정신과 의료기관에서 불면증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A씨는 2020년 6월22일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서울 서초동의 한 지하철역 인근으로 향했다. 그는 차에서 함께 내린 뒤 "일이 생겨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며 다시 차량에 올라탔다. 뒤따라 차에 탄 아버지를 준비한 둔기로 내리쳤다.
B씨는 처음에는 아들이 자신을 공격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머리에 무언가 부딪힌 것으로 생각해 "피가 난다"며 아들에게 병원에 가자고 했다.
A씨는 아버지를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주차장에 도착하자 다시 둔기를 휘둘렀다. 그제야 아들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B씨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며 아들을 안심시켰다. A씨는 결국 아버지를 도로 인근에 내려준 뒤 달아났다.
수사 과정에서는 A씨가 벌인 대규모 사기 범행도 드러났다. 그는 원금에 이자까지 붙여 갚겠다고 속이는 등의 수법으로 27명에게 약 111억원을 받아 가로챘다. 일부를 갚았지만 상당한 피해액이 남은 상태였다.
A씨는 존속살해미수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가로챈 금액 가운데 약 8억3000만원을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도 명령했다.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기존 채무 변제와 유흥비·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문서위조·사기 범행을 저지르고 범행 도구로 아버지의 뒷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쳤다"며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질타했다.
다만 A씨가 가로챈 돈 가운데 상당액을 기존 채무 변제 등에 사용하면서 재판 당시 남은 피해액이 약 16억원인 점과 존속살해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등을 고려했다. 특히 피해자인 아버지는 아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재판부에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1심 형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볼 수 없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A씨에게 선고된 징역 8년은 그대로 유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