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는 입사할 때부터 준비해야 할 일"

"노후는 입사할 때부터 준비해야 할 일"

지영호 기자
2010.10.23 09:52

[머니위크 창간3주년 기획]골드실버/ '은퇴 새내기' 장기명 씨

"행복한 노후는 일찍 준비하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은퇴란 불행한 것'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은퇴 준비자 인터뷰 잡기가 대기업 CEO만큼이나 어려워질 무렵, 한 은퇴 교육기관으로부터 장기명 씨(55)를 소개 받았다. 장씨는 올해 8월 은퇴한 은퇴 새내기다.

그는 1982년 28살이 되던 해에 기업은행에 입사해 올해 초까지 28년 동안 한 우물을 판 금융맨이다. 현재 그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리프레쉬먼트 교육을 일주일에 두번 받는다. 같이 교육을 받는 동기생은 140명 정도. 예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장씨는 "베이비붐 첫 세대라 그렇다"고 말문을 연다.

"우리 세대는 어찌 보면 불행합니다. 부모님은 봉양하고 자식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는 세대죠.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여력도 없었던 세대입니다."

은퇴가 기다려졌던 사람

장씨는 지난해 낙원상가에서 60만원을 주고 기타와 엠프 등을 샀다. 젊었을 때 쳤던 기타가 생각나서다. 그는 자신이 제법 괜찮게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있다며 50~60년대 가수와 곡명을 줄줄이 읊어댔다.

그가 은퇴를 앞두고 재미를 붙인 것은 또 있다. 여행 후 기행문을 남기는 일이다. 그가 자주 들락거리는 동기 카페에 그가 다녀온 곳에 대한 감상문을 올리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은행에서 흔치 않은 이공계 출신에 전산 업무를 상당기간 맡아온 터라 컴퓨터 활용도 젊은이 못지않다. 감상적인 글과 함께 사진과 음악을 함께 편집하면 나름 괜찮은 작품이 나온다고 자평한다.

"은퇴할 때가 되니까 젊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더군요. 음악도 가끔 하고 여행도 다니고 글도 쓰고 하는 게 요즘 저의 생활입니다."

그는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왕조 왕릉 기행(가제)>이라는 책을 집필 중이다. 약 40~50개의 능을 순회하면서 능에 얽힌 사연이나 야사 등을 재미있게 엮을 계획이다.

집필 초짜다 보니 미숙함도 있다. 9월 말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삼릉과 서오릉을 갔다가 왕복 40Km를 되돌아와야 했다. 월요일에는 쉰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릉을 다니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하루 8시간에서 10시간까지 집필을 해도 지루함을 모른다는 것이 장 씨의 이야기다.

책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은행 지점장을 하면서 부모의 재산을 두고 다투는 자녀들을 셀 수도 없이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로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에게 남겨줄 것이 없더군요. 그래서 글을 써서 남겨주자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관심이 있던 역사 기행문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입니다."

'월급의 절반 무조건 저축' 원칙

그의 차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1999년식 쏘나타 2.0이었다. 지난해 집필 계획을 세운데다 아내와 여행을 함께 다닐 요량으로 11년 만에 차량을 SUV로 바꿨다. 그만큼 알뜰하게 살았다.

그가 여유로운 노후를 맞이한 이유 역시 검소함에서 비롯됐다. 장 씨는 입사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수입의 절반을 무조건 저축하는 원칙을 세웠고 은퇴하는 시점까지 이를 지켰다고 말한다.

그렇게 15년을 모아서 1억원을 만들었다. 1997년 당시 연봉이래야 3500만원 정도가 전부였다. IMF 외환위기로 모두들 힘들어할 때 거둔 성과라 자부심이 더했다.

"1억원 중 보람은행 정기예금에 8000만원을 넣었더니 3년 뒤 수익이 158%가 났어요. 1억2000만원 정도를 만든 거죠. 목돈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돈이 빨리 불어나더군요."

2001년 은행이 퇴직금 누진제를 포기하면서 중간정산을 하게 됐다. 1억2000만원이 또 수중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월급의 절반을 모은 6000만원과 합쳐 모두 3억원이라는 목돈이 생긴 것.

그는 그 돈을 평소 주의깊게 봐왔던 아파트 두 채에 투자했다. 과천 16평형과 반포 27평형 아파트였다. 과천 아파트는 2년 뒤에 팔아 175%의 수익을 냈고, 반포 아파트는 월세로 전환해 매달 100만원의 고정수입을 받고 있다.

"당시 아파트 가격이 최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부동산 투자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미처럼 모아서 아파트 산 것을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준비된 자, 노후가 두렵지 않다

장 씨는 입사하면서부터 은퇴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 수입과 지출을 엑셀로 꼼꼼히 기록하고 숫자가 맞지 않으면 될 때까지 맞춰봤다. 은퇴 계획도 철두철미했다. 은퇴 후 월 500만원의 수입이 되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극히 보수적으로 계획했지만 금리가 너무 낮아 계획만큼 되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연금이 있고 월세와 상가 임대료 등을 합하면 계획보다 조금 못합니다. 아무리 꼼꼼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을 감안해 은퇴 계획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아야 하더군요."

장 씨의 생활신조는 '자족'이다. 1000만원을 쓰는 생활이나 500만원을 쓰는 생활이나 적응하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생활한 지도 28년이 됐다.

그래서 퇴직자의 30% 정도에게만 주어지는 외부 감사나 이사 자리에 별로 눈이 가지 않는다. 1~2년 더 월급을 받아봐야 남은 노후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성공 확률 1%라는 창업도 노후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표현한다.

반면 자신은 입사부터 착실히 준비한 덕분에 즐기면서 봉사할 수 있는 여유 있는 노후를 맞이하게 됐노라고 설명한다.

"집필이 끝나면 일본어 공부를 2년 내에 마스터할 계획입니다. 지금 꿈은 역사 해설가입니다. 집필하면서 쌓은 지식에 일본어 실력을 갖춰 고궁 등에서 일본인을 상대로 무료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돈을 벌지 않았던 28년과 돈을 벌었던 28년이 있었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기간인 셈이다. 준비된 자에게 노후는 두렵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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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호 산업2부장

'두려울수록 맞서라' 처음 다짐을 잊지 않는 기자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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