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당국·업계 '신호등' 때문에 속타는 이유

식품당국·업계 '신호등' 때문에 속타는 이유

장시복 기자
2011.05.14 08:01

시행 한달반 식품업계 참여 '사실상 전무'‥인센티브 유도방안 마련

# 초등학생·유치원생 두 딸을 가진 서울 화곡동의 김 모씨(38·여)는 여느 주부와 다를 바 없이 아이들 먹을거리의 영양 구성에 관심이 높다. 최근 식품에 대해 이른바 '신호등 표시제'가 본격 실시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영양성분을 손쉽게 확인해가며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을 것 같아 귀가 솔깃했다.

그런데 기다렸던 제도 시행이 한 달 반을 훌쩍 넘겼지만 마트나 슈퍼 어느 곳에서도 '영양성분 신호등'이 보이는 식품을 찾긴 어려웠다. 김씨는 "이렇게 실효성 없이 행정을 하려면 왜 굳이 제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린이 건강을 위한 '신호등 표시제'가 시행된 지 한 달이 넘어섰지만 식품 업체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제도시행에 지지부진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애초 자율 시행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인데, 실효성 논란이 일자 이참에 의무화로 전환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13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29일 식약청 고시로 '어린이 기호식품 영양성분의 함량·색상·모양 표시(신호등 표시제) 기준 및 방법'이 본격 시행됐지만 한 달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참여 식품업체가 사실상 전무하다. 보광훼미리마트를 비롯한 일부 유통업체들만 자체 판매하는 삼각김밥·샌드위치 등에 신호등 표시제를 적용했을 뿐이다.

신호등 표시제는 어린이용 먹을거리 제품 앞면에 과잉 섭취에 대한 우려가 높은 나트륨·당류·(포화)지방 등 함량에 따라 '녹색(낮음)·황색(보통)·적색(높음)' 표시를 하도록 해 올바른 영양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된 제도를 참고해 2년 전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이 처음 추진했다. 당시 중국 멜라민 파동 등으로 식품안전 우려가 커지자 내놓은 카드였다.

정부는 지난해 공청회 등을 통해 신호등 표시제가 정착될 경우, 소비자 신뢰 회복과 기업 이미지 제고로 매출 신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식품업계에 대해 설득 작업을 벌여왔다. 6개월 내에 참여 제품이 20% 정도는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의 낙관적 기대와 달리 식품업계는 여전히 제도 참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나트륨이나 당 함량이 달라질 경우 맛 자체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농심 등 라면업체의 경우 컵라면 나트륨 함량이 높은 편인데 '빨간색'이 자칫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줄 가능성이 높아 꺼리는 상황이다.

나트륨을 낮추기 위해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도 속이 타겠지만 업계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라며 "신호등 표시제를 위해 포장을 다시 해야 하는 비용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선 업계가 그동안 입법에 강력 반발해 온 점을 들어 '뻔히 예상됐던 결과' 아니냐며 정부의 안일한 대책 추진을 지적하기도 했다. 식품업체들이 가격인상엔 적극적이면서 정작 중요한 영양성분 표시에는 소극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업계의 '딴청'에 내심 불쾌해 하면서도 계속 설득 작업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일에는 식품업체 30곳과 간담회를 열어 제도 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신호등 표시제를 의무화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이 제도에 '일몰제'가 적용돼 2013년 3월 이후에야 개정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 식품당국 관계자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일자 국회에서도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은 마땅한 법적 수단이 없어 독려 작업을 벌여나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업체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식약청의 출입 검사를 일정기간 면제해주거나 판매대 설치비용을 감면해 주는 등 참여 유인책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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