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주년 광복절] 여성 항일 독립운동가 오희옥 선생 인터뷰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자기네 땅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돼. 친일파 후손들은 잘 살고 독립운동 한 사람들은 아직도 힘들게 살고. 정부가 확실하게 친일파를 청산해야 해"
중국 땅에서 태어나 14살부터 독립운동을 했던 어린 소녀는 올해 여든여덟의 할머니가 됐다. 오희옥 선생은 1926년생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와 독립군들에게 밥을 해주며 뒷바라지를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의병이셨고 아버지는 만주에서 일본군과 싸웠어. 청산리 싸움하고 봉오동 전투에 아버지가 나가셨지. 언니는 중학교를 다니다가 최전방으로 가서 광복군에서 활동했어. 가족들, 친척들이 모두 독립운동을 했고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일본군이 저지르는 짓들을 들었어"
선생이 처음 독립 운동을 시작한 것은 1939년. 선생은 14살 나이에 중국 땅 요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전지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戰地工作隊)의 공작대열로 활동했다. 친구들과 언니들과 함께 그는 일본군에 포로로 잡힌 한국군들이 있는 포로수용소를 향해 방송을 했다. "중경에 우리 임시정부가 있다. 김구 선생이 계신 임시정부가 중경에 있다. 빨리 나와라. 탈출하라"
선생과 청년전지공작대 동지들은 일본군 내의 한국인 병사에 대한 초모(징집) 공작의 하나로 연극이나 무용 등을 통해 적국의 정보를 수집했다. 공연을 통해 번 돈으로는 일본군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국 청년들을 돕기도 했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활동하던 선생은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第5支隊)로 편입됐고, 1944년까지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거사 뒤 일제의 포악은 더 심해졌다. 일제의 사나운 압박을 피해 임시정부는 중경으로 떠났다. 북경에서 천진으로, 다시 남경을 거쳐 중경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27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어린 선생은 김구 선생과 이 고된 유랑을 함께 했다.
선생이 19세가 되던 해 나라가 해방됐다. 독립운동을 하던 친척들과 선생은 기선을 타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용인 원삼면이었다.
"남경에 있던 아버지는 그 때 함께 못 가셨어. 김구 선생으로부터 명령을 받으셨지. 임시정부가 북경에 가서 일본군 요인을 암살하라고. 아버지는 일본군을 암살하러 가셨다가 옆구리에 총을 맞으시곤 붙잡히셨지. 신의주 감옥에 갇히셨어. 아버지는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속이셨어. 광복군이라고 하면 목숨이 위험했거든. 그래서 3년간 감옥에 계셨지. 나중에 일본인들이 아버지를 트럭에 싣고 벌판에다 버렸어" 생이별 했던 아버지와는 해방 후 인천에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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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은 뿔뿔이 흩어졌다. 선생은 피복공장에 취직했다. 언니는 지하에서 담배를 말았다. "그때는 먹을 게 없어서 보리쌀로 죽을 쒀먹었어. 피복공장에서 일해 받은 첫 월급으로는 금반지를 받았어"
아버지, 언니와 용인에서 살던 중 한국전쟁이 터졌다. 하지만 선생의 가족은 피난을 가지 않았다. 언니와 집에 있던 선생은 인민군의 나오라는 소리에 밖으로 나갔다. "쿵쿵 쿵쿵 소리가 나고 다음날 거리에 가보면 피가 흥건했어. 어느 날은 집에 있는데 누가 자꾸 나오라고 했지. 나가보니 나한테 '너 일본 여자경찰로 일했지?'라고 물었어. 나는 '아니다. 중국에 있었다'고 했어. 죽을 뻔했어"
전쟁이 끝난 뒤 1954년 선생은 용인 원삼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26살때쯤 교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났어. 아버지 친구 분이 나한테 시험을 보라고 하셨지. 그래서 시험을 쳤고 1월에 합격해 교사를 시작했어"
이후 원삼면 청룡마을 분교에서 8년을 재직했다. 그 뒤 시흥군 신동국민학교로 전근을 갔고 1991년 홍제동 고은국민학교에서 정년퇴임 했다.
정부는 1990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선생이 교편을 놓기 1년 전이었다. 정년퇴임한 선생은 연금으로 생활했다. 1997년에 현재 살고 있는 경기도 수원 보훈복지타운아파트에 입주했다. "여기 사람들 중 40%는 독립운동가야. 나머지는 한국전쟁 유공자들이지"
"여성 독립운동가가 200명인가 있었다는데, 이제 살아있는 사람은 나까지 3명이야. 민영주, 유순희 그리고 나"
선생은 일본을 향해서도 입을 열었다. "요즘 일본이 계속 망언을 하고 있어. 거짓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거야. 양심있는 몇몇 일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일본 정부는 망언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어. 그러지 말고 반성을 해야 해. 일본 젊은 사람들은 양심있는 일본인들을 본받아 역사를 바로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해"
선생은 한국 청년들에게 역사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학교에서는 역사를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해. 의병시절부터 제대로. 우리 젊은 사람들도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일본이 망언을 하고 독도를 자기 땅이라 주장하는 것에 맞설 줄 알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