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

2005년 국가정보원이 DJ정부 4년간 도청과 감청을 진행했다는 검찰수사가 발표되고,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피의자로 법정에 섰다. 당시 국정원 도청 사건의 주임검사는 박민식 현 새누리당 의원. 검사 임관 이전 외교부 공무원이었던 그는 각각 법조계(신건), 외교부(임동원) 대선배를 자신의 손으로 구속해야 했다.
특수통 검사 출신인 박 의원은 법조브로커 김홍수 사건을 수사하며 조관행 전 부장판사는 물론 검찰 선후배 등을 구속시켰다. 그는 2004년 참여정부 인사가 연루된 '오일게이트' 사건을 담당하는 등 강력한 추진력을 요구하는 권력형 불법 사건을 처리하며 '불도저'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법조계 선후배들을 자신으로 손으로 처벌해야 하는 압박감 속에 결국 2006년 천직으로 여겼던 검찰을 떠났다.
2년 뒤인 2008년. 박 의원은 자신의 고향인 부산 북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정치인 박민식으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 박 의원은 검사 시절 '불도저'라는 별명에 걸맞게 7년의 의정활동 기간 동안 굵직한 입법정책으로 주목 받고 있다.

[그는…불도저 검사, 맨몸으로 정계입성]
2008년 4월 18대 총선. 박 의원은 어떤 계파의 지원도 없이 부산 북구 국회의원 당내 경선에 도전했다. 당시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지역 3선을 지낸 정형근 전 의원을 누르고 한나라당 후보로 선정됐다.(공교롭게도 정 전 의원은 국정원 도청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 사건을 담당, 이름을 알린 박 의원이 정계진출 문턱에서 정 전 의원과 경쟁을 하게 됐다.)
그의 첫 선거 슬로건은 '불도저 검사, 다시 한번 고향 북구를 위해 불도저가 되겠습니다'.
타 지역 출신이 오랜 기간 지역구 의원을 역임하면서 북구 출신 의원을 바라는 지역 민심을 겨냥한 것. 아울러 부산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가운데 하나인 북구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박 의원은 무난히 정계에 첫 발을 디뎠다.
2008년 재선에 성공한 박 의원은 지역구 숙원사업인 부산 북구-연제구 만덕3터널 건설 사업을 성사키는데도 힘을 보탰다. 1700억원에 달하는 이 사업은 올해 말 공사를 시작한다. 일각에서는 박의원의 '3선 보장 터널'이라는 뒷말이 있을 정도로 공을 들인 사업이다.
박 의원은 "북구의 고질적인 교통체증과 낙후된 지역경제 등을 감안하면 만덕3터널은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며 "낙후된 지역의 발전은 국가 전체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해당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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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원은 대부분의 의원이 그렇듯 차기 총선 출마 및 당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3선 이후에 행보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한다. 그는 "3선 의원이 되면 국회에서 자연스럽게 역할이 주어질 것"이라며 "부산시장 역시 지역의 살림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이지만 국회에서도 할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머니투데이 사용설명서 기사의 '뇌구조'한 부분은 '물음표'로 남겨달라고 요청했다. "차후 고민을 통해 제게 주어진 소명을 결정하면 그때 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물음표'는 국회선진화법에 버금가는 국회개혁 정책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박 의원은 초선 당선 이후 첫 국회회기가 소고기 파동으로 파행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을 위한, 일하는 국회가 되려면 여야가 대립과 정쟁의 평행선을 이어가기보다는 타협과 소통을 통해 이견을 조율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키워드① 월남떼기 넷째]
박 의원의 부친은 1972년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박순유 중령이다. 이후 그의 어머니는 집안에서 경작한 농작물을 구포시장에서 팔면서 가계를 꾸리며 자연스럽게 '월남떼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6남매 중 넷째인 박 의원은 "구포시장 월남떼기 넷째가 선거에 나왔다"며 총선 출마 당시 지역 주민들의 응원을 받았다.
베트남과의 인연 역시 깊다. 박 의원과 그의 형제들은 2007년 사재를 모아 부친이 전사한 베트남의 한 지역에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2008년에는 도서관을 완공했으며 7년동안 장학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는 여동생의 입김이 컸다는 후문이다. 진보성향 시민단체 출신인 여동생은 "우리 가족으로서는 아버지가 전사한 아픔이 있지만 우리 군인이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남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도 사실인 만큼 서로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모친과 형제들을 설득했다.
박 의원은 "나는 보수정당 의원인데 여동생은 진보적인 성향이고, 매제 역시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명절 때 가족끼리 모이면 정치적 견해가 달라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낙후한 베트남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줘야한다는데 뜻을 같이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같은 연결고리 덕에 박 의원은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당시 특별 수행자로 동행했다. 오는 11월에도 베트남 국회의 초청으로 모친을 모시고 베트남을 방문한다. 박 의원은 베트남 참전용사들에 대한 국가보상을 위한 정책마련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의원으로 꼽힌다.
[키워드② 무계파 재선의원]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 내부에는 계파별 모임이 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소속된 계파가 전혀 없는 몇 안 되는 여당 의원이다.
박 의원은 "특별한 계파의 지원 없이 맨몸으로 국회의원이 되면서 어느 계파에서 불러주지 않더라"며 "초선 때는 당내 혁신모임인 민본21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재선 이후 딱히 적을 둘 곳이 마땅치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사리사욕이나 특정 집단만을 위한 계파활동은 지양해야 하지만 같은 당 내에서도 뜻이 같은 의원들이 결사를 하고 정책을 이루는 계파정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내년 총선에서 3선에 성공하며 나와 뜻이 같은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들거나, 생각이 같은 집단에 소속돼 3선으로서 우리 정치환경을 개선하는 선이 굵은 정치를 하고싶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타협과 양보, 인내를 갖고 이견을 조율하는 노력이 국회에서 효과적인 정책을 개발하는 필수요건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계파활동은 이같은 국내 정치문화를 혁신키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박 의원은 2013년 4월 야당과의 꾸준한 협상을 통해 '경제민주화법' 산파 역할을 했다. △대기업 임원 연봉공개 △하도급법상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 확대 △일감 몰아주기 방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법안은 여야의 입장 차이가 컸다. 당시 정무위 간사를 맡은 박 의원은 야당 파트너와의 꾸준한 협상을 통해 단 한차례 파행 없이 합의안을 내놨다.
하지만 보수진영 내에서 이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 대통령마저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대선 공약 내용이 아닌 것도 포함됐다"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우려의 뜻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의원은 뚝심을 갖고 야당과의 합의안을 관철시켰고, 이로 인해 경제민주화 역시 상당부분 진행됐다.
이후에도 박 의원은 소신에 따른 행보를 지속했다. 2013년 10월에는 서청원 의원의 재보선 출마 반대 기자회견을 단행했다. 대표적 친박 의원인 서 의원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비박' 의원이 됐다. 자신을 보호해줄 계파가 없는 박 의원으로서는 '친박' 진영을 적으로 돌리는 모험을 한 것.
박 의원은 "당시 현역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당내 정치쇄신특위 소속이었다"며 "까마득한 선배인 서 의원을 반대하는 것은 부담이 됐지만 특위에서 마련한 공천 배제 원칙과 기준을 곧바로 부정하는 것에 침묵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 의원 공천 반대, 경제민주화법 뿐 아니라 박 의원은 당내정서와는 온도차가 있는 자신의 입장을 서슴지 않고 밝혀왔다. 그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와 관련해 항명사건으로 동료의원들의 비판을 받은 윤석열 대구고검 검사(당시 국정원 특별수사팀장)에 대해 "윤석열 지청장은 제가 아는 한 최고의 검사입니다. 소영웅주의자라고 몰아가지 마세요"라며 SNS를 통해 옹호키도 했다.
[대표법안= 화학적거세법, 채권의 공정한 추심법]
박 의원은 2008년 9월 '화학적거세법'을 발의했다. 상습적 아동 성범죄자에게 주기적으로 호르몬 주사를 투여해 성적 욕구를 감소시키도록 하는 이 법은 인권침해 논란으로 인해 국회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2009년 9월 '조두순 사건'이 터지면서 1년만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2010년 6월 국회를 통과했다.
박 의원은 "한국에서 가해자에 대한 인권보호는 점차 개선되고 있디만 오히려 피해자의 인권이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다"며 "보편적인 인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인원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채권의 공정한 추심법은 '오후 9시 이후 전화, 혹은 방문을 통해 채무자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빚독촉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은 불법적이고 흉포한 채권추심을 방지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으로 자리잡았다.
이 밖에도 박 의원은 '범죄피해자 보호기금법'을 마련해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토록 했다. 박 의원은 이 기금에 사재 1000만원을 기탁키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도둑뇌사 사건' 이후 정당방위 범위를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지난 3월부터 국회 미방위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1년이 채 남지 않은 임기기간 중 그는 수사기관의 감청범위를 확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및 군사시설의 사이버 보안 강화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특히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그는 박지원, 우윤근, 강기정 등 야당 주요 의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설득작업에 나섰다. 최근에는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을 설득하기 위해 면담을 신청했다.

[그의 사람들→ 원희룡, 김영주, 그리고 황교안]
1988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박 의원은 2년만인 1990년 사표를 내고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당시 함께 고시공부를 한 인사가 원희룡 제주도지사. 학교 선후배 사이인 원 의원과 박 의원은 당내에서도 당 혁신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시장 경선에 나선 박 의원은 '남경필-원희룡-박민식' 소장·개혁 벨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원 의원 역시 "(박 의원처럼) 젊고 에너지 넘치고 속이 꽉 차고 지혜까지 갖춘 그런 상품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박 의원을 지원했다.
야당에서는 김영주 새정치연합 의원과 돈독한 신뢰관계를 갖고 있다. 경제민주화법 합의 당시 여야 간사였던 이들은 법안 합의를 놓고 신경전을 펼쳤지만 결국 합의를 도출했다. 이과정에서 신뢰를 형성한 이들 의원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소통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고 서로를 높이 평가했다. 지난해 국회방송에서 김 의원이 박 의원을 공개 칭찬했을 정도다.
총리 후보자가 된 황교안 법무부 장관 역시 박 의원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박 의원은 2005년 황 후보자가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국정원 도청 사건을 수사할 당시 주임검사로 실무를 맡으며 호흡을 맞췄다. 2006년 황 후보자가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되자 검찰 내부 통신망에 이를 강력히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총리 지명 이후에도 박 의원은 "황 후보자는 신망이 두터운 대표적 검사의 전형이다. 국정과제인 부정부패 척결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할 인사"라고 옹호했다.
[요주의!]
소속 계파가 없는 박 의원은 그간 주요 계파 수장, 혹은 당론보다는 자신의 소신에 따른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당내 비판적 목소리도 적지 않다. 소속된 계파가 없기 때문에 당내 비판적인 목소리를 상쇄할만한 우군이 많지 않다.
자신의 소신에 충실한 목소리를 내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화학적거세법'은 인권논란에 빠졌다. "사형제 찬성"이라는 확고한 목소리를 내는 몇 안되는 의원 가운데 하나다. "검찰 및 국정원의 통신감청 허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진보진영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정치혁신 등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야당 의원보다도 개혁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안에 대한 입장표명이 명확하다. "혼자 튀려한다"는 지적은 극복해야 할 이미지이다.
[Tip! 고시 '2관왕' 박민식이 말하는 공부비법]
박 의원은 1988년 외무고시에 합격했지만 1990년 말 사표를 냈다. 그리고 2년여 만인 1993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비결에 대해 그는 "남들에 비해 IQ가 높지 않다"며 "공부는 얼마나 집중을 잘하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1990년 외교관이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휴직을 권했지만 결국 사표를 냈다. 박 의원은 "사표를 냈으니 돌아갈 곳이 없는 백수신세였다"며 "절박한 상태에 있어야 더욱 집중을 할 수 있다. 절박한 상황에서 노력을 하는 사람은 하늘도 돕는다. 플랜B, 플랜C 등을 마련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지만 정말 절실한 목표가 있다면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필]
△부산 구포(49세) △18·19대 국회의원(부산 북구) △부산 구포초·구포중·부산사대부고 △서울대 외교학과 △외무고시 합격(외무부 국제경제국) △서울중앙지검 검사 △국회 정무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국회 미방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