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1: 미국 최대의 출판그룹인 랜덤하우스(지금은 펭귄랜덤하우스)가 가장 중점을 뒀던 분야를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라면 인포테인먼트다. 이것은 인포메이션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신조어다. 보통 이를 정보+오락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오락’이 아닌 ‘무아지경’이다. 엔터테인먼트는 중세 유럽에서 온 말로, 인간이 평상시에 신만을 생각해야 했는데 신이 아닌 무언가가 마음속으로 들어와서(enter해서), 상주(sustain)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무엇에 빠진다! 결국은 재미다. 정보를 담되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여야 독자가 책을 찾는다.
풍경2진중한 책을 주로 펴내던 일본의 이와나미쇼텐에서 1995년 중반에 이와나미신서 중의 한 권으로 에이 로쿠스케의 ‘대왕생’을 펴냈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가를 쉽게 풀어낸 책이었다. 이와나미의 편집자는 저자가 TV에 출연해 ‘죽는 방법’를 강의하는 것을 보고 이 책을 기획했다. 이 책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알려줘 노년층의 호응을 얻었고, 사례 중심의 글을 활용한 참신한 지면에 담아 읽기가 쉬웠고, 단순한 재미나 달변이 아닌 확실한 주장을 담았기에 성공했다는 사후분석이 있었다. 이후 에이 로쿠스케의 책은 무조건 초판 10만부를 찍어야만 했다.
풍경3카드대란이 터진 2003년부터 한국의 인문시장에서는 강명관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등의 인문적 실용서가 잠시 득세했다. 이 책들은 역사의 비주류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발상의 전환이라는 확실한 주제를 담았으며, 실사구시 혹은 이용후생의 철학을 품었고, 문명의 전환기인 18세기를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책들은 아날로그 문명에서 디지털 문명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던 지식인들이 열렬하게 찾았다.
올해 상반기 출판시장에서는 이 세 풍경이 겹쳐서 나타났다. 상반기 출판시장 휩쓴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외, 인플루엔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한빛비즈), ‘그림의 힘’(김선현, 8.0),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생각의 길),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부키), ‘7번 읽기 공부법’(야마구치 마유, 위즈덤하우스) 등의 책들은 정신없이 빨려들어 읽을 수 있고, 힘겨운 삶을 이겨낼 지혜를 알려주고 있으며,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거나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을 담고 있다.
세계 경제는 불황의 늪에서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불평등의 정도는 날로 심해지고 있으며, 환경재앙의 공포는 도를 더해가고 있다. 게다가 메르스 불안까지. 이런 시대에 인간은 인문적 깊이로 포장된 실용적인 지식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야기성이 더욱 강화되고, 즉각 활용할 수 있으며, 지식이 아닌 지혜를 품은 인문적 실용서들이 더욱 득세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