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내셔널지오그래픽 아시아·카오스재단 등 설립 및 활동 본격화
"내셔널지오그래픽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진행된 과학연구·탐험 중 아시아 학자들에게 지원된 그랜트(Grant, 정부 또는 단체가 주는 보조금)는 100건이 채 안 되더군요. 재단 설립 후 127년 간 1만1000건 이상의 그랜트가 성사되고 진행 중인 데 말이죠."
오는 10월, '내셔널지오그래픽 아시아'가 공식 출범한다. 초대 대표를 맡은 이재철 씨는 아시아재단을 세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 찬밥 신세인 기초·보호학문 분야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공룡 화석을 발견하겠다 또는 아마존에 가서 많게는 수십년 간 알려지지 않은 신(新)물질을 발굴·연구하겠다고 하면 정부가 과연 투자를 할까요. 정부 구조상 미래 성과가 확실치 않은 탐험과 R&D(연구·개발)에 돈을 내놓긴 힘들죠. 기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 모르고 요즘처럼 기술 이전 등을 통해 바로 성과를 끄집어 낼 수 있는 R&D 과제에 집중하는 분위기에선 더욱 어려워요. 우리가 그것을 대신 하겠다는 겁니다."
취지가 비슷한 사업들이 잇따라 일어나면 하나의 흐름이 된다. 지금 한국 R&D(연구·개발) 시장이 그렇다.
올들어 벤처 1세대들이 과학기술·문화 발전을 위해 비영리 재단을 세우고 펀드를 마련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기업 재단의 '통 큰' R&D 예산 지원 활동도 본격화되면서 대학·민간 과학연구의 주된 재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통적 후원자 위치였던 정부 역할이 차츰 줄어드는 대신 기부금을 토대로 한 '기부과학'이 우리나라에서도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벤처 1세대가 선봉장
내셔널지오그래픽 아시아 총괄 대표인 총괄 대표인 이재철 씨는 지난 2004년 '바이콘'이란 이름의 모바일 앱(App) 개발사를 만든 우리나라 벤처 1세대 출신이다.
이때 현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만나 아이위랩(카카오의 전신)에 합류했고, 모바일메신저 '카카오' 및 실시간 검색엔진 개발 등의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 이후 SK플래닛 출범 당시 모바일 앱 개발자 300여명을 이끄는 중책을 맡은 이 씨는 SK플래닛 앱 개발 기반 및 생태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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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맺은 우리나라 대표 벤처 1세대 기업인 5명이 아시아 재단 설립에 적잖은 힘을 보탰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이 공동 출자해 세운 벤처기부펀드 'C프로그램'은 가난한 과학자와 탐험가에게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재단 활동에 지지를 표하며 매년 10억원씩, 향후 5년간 총 5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과학문화 저변화에도 앞장
앞서 이기형 인터파크 회장은 기초과학 육성이란 타이틀 아래 '재단법인 카오스(KAOS)'를 지난 2월 출범시켰다. 카오스는 수학과 기초과학을 대중강연·지식콘서트·출판 등으로 대중에게 쉽고 흥미 있게 전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회장은 이 재단 설립·운영을 위해 본인의 인터파크 보유주식 일부를 매각, 10억 원의 설립·운영자금을 마련했다. 민간 영리기업 CEO(최고경영자)가 순수과학 분야 대중화를 위해 공익재단을 설립한 것은 국내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시도다.
이 재단은 내달 대규모 지식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며, 모든 강연을 무료로 제공하는 무크(MOOC, 온라인대중강의) 플랫폼 개발도 추진 중이다.
이 회장은 "과학에 많은 자원을 투자할 때가 됐지만, 이는 국가나 과학자들만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지속적인 후원을 통한 대중적 지지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며, 카오스 재단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 내는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조원대 과감한 투자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은 지난 13일 사물인터넷(IoT), 스마트센서 등 미래 기술 후보 10개 과제에 대한 연구를 전폭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선정 과제를 보면 '나노 크리스털 합성물질을 이용한 3차원(3D) 고감도 스마트 촉각센서(UNIST 이지성 교수)', '병원균 검출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발광 인공항체(한양대 김종호 교수)' 등 그 분야도 다양하다. 재단 측은 "당장 사업화가 목표라기보다는 학계 연구진이 제시한 과제 중 국가적으로 관심을 갖고 키울 필요가 있는 기술들을 선정했다"고 전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은 지난 2013년 8월 세워졌다. 향후 10년간 기초과학 분야 연구에 1조 50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재단은 R&D 성과물은 삼성이 아닌 '개발자 소유'가 원칙이라며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은 "독창적인 연구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는 연구를 전폭 지원하겠다"며 "특히 인문과 사회, 예술, 공학, 자연과학 등 분야 간 경계가 없는 융합 연구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국가 R&D 예산은 12조 6380억원. 올해(12조 9350억원) 보다 2970억원(2.3%) 축소된다. R&D 예산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건 1991년 이후 처음이다.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민간 자본 중심의 ‘기부과학’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 관련 한 전문가는 "기부과학이 활성화되면 과학기술자들은 정부 지원에 기댈 필요가 사라진다"며 "기부문화가 활성화된 미국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 등 재벌 CEO(최고경영자)와 비영리 재단을 통한 지원이 전체 R&D 재원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