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 새책] 영국 소설가 조지 기싱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

"나는 내가 읽는 것의 일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꾸준히 즐겁게 읽을 것이다. 나는 미래의 삶을 위해 지식을 축적하려는 것일까? 잊는다는 것은 더는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낄 뿐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 뭘 더 바랄 수 있겠는가?" (72쪽)
누구보다 책을, 그리고 읽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은퇴 후 평화로운 시골마을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영국의 문인 헨리 라이크로프트다. 라이크로프트는 자신을 둘러싼 책과 자연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을 매일 적어나간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기싱의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은 라이크로프트의 치열한 자아 성찰의 기록을 담은 수필이자 현대문명과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예리한 비평집이다.
조지 기싱은 '서문'을 통해 자신과 가까운 헨리 라이크로프트가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남긴 글들을 정리해 출간한다고 고백했지만 사실 라이크로프트는 실존 인물이 아닌 기싱 자신이다. 기싱은 자신의 삶과 사유, 꿈을 투영한 가상 인물을 만들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는 각박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사색을 즐기면서 글쓰기로 힘겹게 생계를 꾸려온 가난한 문인으로서의 삶을 돌아본다. 또 물질절 궁핍이 삶에 미치는 영향과 상업화되는 글쓰기에 대한 우려를 라이크로프트의 이름을 빌어 담아냈다.
자아성찰에만 그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 당대 영국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녹아있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 물질적으로는 부유해졌지만 새로운 정신문화가 부재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누구보다 책과 자연을 사랑했던 그답게 과학 문명과 산업화의 폐해, 국제 분쟁에 대한 냉철한 분석, 호전적 세력들에 대한 반감도 글 곳곳에서 나타난다.
자신의 조국인 영국과 영국인들, 영국 음식에 대한 애정도 한껏 드러낸다.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정갈한 영국 음식에 대한 자랑을 숨기지 않는가 하면 셰익스피어, 괴테, 기번 등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애정도 글에 흐른다.
르네상스기 프랑스의 '몽테뉴'가 있다면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는 조지 기싱이 투영된 '헨리 크로포트'가 있다. 그의 담백한 문장을 통해 인간 본성과 자아,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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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기록한 기싱의 노력은 어떤 것이든 '상상 그 이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울림을 준다.
'영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필로 꼽히는 작품'답게 미려한 문장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재미는 덤이다.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조지 기싱 지음. 박명숙 옮김. 은행나무 펴냄. 360쪽/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