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Law&Life-'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①] "도와줬다가 범법자될까봐"…국가 먼저 제 역할 해야

#지난달 24일 밤, 식당이 즐비한 광주의 대로변에서 한 여성이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른바 '데이트 폭력'이었다. 폭행은 30여분간 계속됐다. 남성은 여성을 쫒아가며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고, 심지어 흉기까지 휘둘렀다. 여성이 달아나지못하게 발목을 짓밟고 온몸을 때려 전치 7주에 이르는 상처를 입혔다. 거리에 있던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이를 지켜봤다. 그러나 남성을 말리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지나가던 승용차 운전자는 여성이 떨어뜨린 핸드백을 주워 사라졌다.
#지난해 8월, 대전에서 승객 두명을 태우고 가던 택시가 갑자기 제멋대로 주행을 하더니 앞 차를 들이받고서야 멈춰섰다. 택시기사가 급성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으면서 벌어진 사고였다. 승객들은 운전석에 꽂혀있던 열쇠를 빼서 트렁크 문을 열어 가방을 꺼낸 뒤 다른 택시를 잡아타고 현장을 떠났다. 택시기사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왜 택시기사를 방치했냐고 묻자 당시 승객들은 공항버스를 놓칠까봐 그랬다고 했다.
각각 다른 도시에서 1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사건이지만 본질은 같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눈 앞에 두고도 목격자들은 돕지 않았다. 그러나 돕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할 근거는 우리나라 현행 법에 없다. 일각에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방치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면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을 경우 처벌하도록 법을 바꿔야 할까?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하더라도 형사 처벌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다가 문제가 생겨도 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제도를 갖추는 게 먼저라는 지적도 있다.
◇구조할 수 있는데 안 하면 '징역 1년·벌금 300만원'?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도록 하는 법을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고 한다. 강도를 만나 다쳐 쓰려진 유태인을 어느 사마리아 사람이 구해줬다는 성경 내용에서 유래했다. 넓은 의미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다시 좁은 의미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과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경우 처벌하는 법 2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후자를 법학계 일각에선 '나쁜 사마리아인 처벌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좁은 의미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응급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등 선의를 가지고 타인을 돕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법에도 이런 내용의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 조항 등이 있다.
반면 이른바 '나쁜 사마리아인 처벌법'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돕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법을 뜻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현행법에 없는 이런 '나쁜 사마리아인 처벌법' 조항을 새로 만들 것인지 여부다. 지난해 박성중 바른정당 의원은 구조할 수 있는데도 구조가 필요한 자를 구하지 않은 사람을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 측은 "사회적 연대성의 강화는 도덕적·윤리적 의무이자 공동체 생활에서 최소한의 법적 의무이기도 하다"며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피해자 등을 신속히 구조해 구성원의 공동체 의식을 제고하기 위해서"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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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 처벌 법안'이 발의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18대 국회에서도 '이웃이 각종 위험, 범죄에 직면했는데도 외면하는 등 최소한의 윤리성과 사회연대성마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당시 법안을 살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도덕의 법제화는 개인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어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사람 구하는 건 법적 의무" vs "도덕 규범까지 강제해선 안 돼"
'나쁜 사마리아인 처벌법'에 대한 찬반은 결국 개인의 '선의'를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에서 갈린다. 찬성하는 이들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도덕을 넘어 법적 의무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착한 사마리아인법 공청회'에서 "형법은 애타주의를 강요해서도 안 되고 도덕 규범을 입법화해서도 안 된다"면서도 "공동체 생활에서 최소한의 윤리에 반하는 개인의 무관심과 탈연대성은 형법적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이들은 '도덕을 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게 큰 피해를 준 철천지 원수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떻겠느냐"며 "개인의 상황은 매우 다양하고 도덕적으로 확실하게 비난하기 힘든 상황도 있는데 개인이 도덕적 규범 위반까지 책임지도록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법이 모호하게 적용될 위험이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어떤 경우를 '긴급한 사정' 또는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으로 볼 것인지 등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을 경우 법이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범죄예방 등은 국가와 사회의 의무인데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가 먼저 제 역할 해야"
김경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가의 국민연대성 강화 정책과 적극적인 서비스 제공이 부족한 상황에서 개인에게 연대성을 요구하거나 처벌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광주의 데이트 폭력 방관 사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들은 여성을 도우려고 나섰다가 자칫 쌍방폭행 시비에 휘말릴까 걱정을 한 듯하다"고 전했다. 남을 도우려 나섰다간 오히려 자신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걱정이 들 만큼 국가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깊은 상황에서 개인을 처벌하기 전에 국가가 먼저 제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적 합의가 '나쁜 사마리아인 처벌법' 입법에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도덕의 영역에 형법이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형법 내용의 상당수가 도덕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공동체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민주적 절차를 따랐다면 법률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의 지난해 9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쁜 사마리아인 처벌법' 입법에 대해 응답자의 53.8%가 찬성하고, 39.1%가 반대했다. 다만 20대와 30대에선 각각 찬성이 46%와 46.1%, 반대가 47.9%와 45.4%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전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수치다. 김 부연구위원은 "법안의 필요성과 문제점에 대해 지속적인 토론과 논의,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