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산업 5대 현안 분석]<5>-①정부 및 국회, 금소법 제정 재추진…적합성 원칙 등 과도한 제재 재검토 해야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저축은행 사태, 동양그룹 사태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양산한 금융사고를 막을 근본 대책으로 금융소비자보호 기본법(이하 금소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금소법은 이미 5년 전인 2012년에 국회에 발의됐지만 18대, 19대 국회에서 모두 통과되지 못한 해묵은 법안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 등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며 매번 입법이 무산됐다.
하지만 올해는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금소법 제정을 명시한 데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이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금융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어 법안 통과가 유력하다. 금소법 시행은 보험업계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민감한 사안이다. 금소법 제정으로 인한 보험업계 영향은 무엇이고 문제점은 없는지 짚어봤다.
◇3일짜리 여행자보험 가입하며 재산 확인?=현재 국회에는 정부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이종걸·최운열 의원, 국민의당의 박선숙 의원 등이 금소법을 발의한 상태다. 금소법의 핵심은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금융상품과 판매행위의 속성을 재분류해 ‘동일기능-동일규제’ 체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떤 유형의 금융상품이든 판매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요소를 걸러낼 수 있는 규제체계를 구축한다는 취지다.
금소법은 금융사가 취급하는 모든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예금성·투자성·보장성·대출성 상품으로 재분류하고 모든 금융상품 판매에 관한 ‘6대 판매행위 원칙’ 즉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 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금지 △광고규제를 만들어 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불완전판매와 과잉 대출 등을 방지해 소비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보험업계에서는 6개 판매행위 원칙 중 적합성 원칙의 경우 일부 상품에 한해 적용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적합성 원칙 위반 시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과도한 제재라는 지적이다. 적합성 원칙은 투자성·대출성·보장성 상품의 구매를 권유할 때 면담이나 질문을 통해 소비자의 정보를 파악하고 확인 서명을 받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변액보험 등 보장성 상품의 경우 소비자의 연령, 재산상황, 계약 체결 목적까지 확인해야 한다.
문제는 일부 보장성 상품의 경우 원금손실 가능성이나 투자 성격이 없어 적합성 원칙을 적용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보증보험이나 여행자보험, 실손의료보험 등 일상적이고 비교적 가입금액이 소액인 보험까지 계약자의 연령, 재산상황 등을 요구하기는 어렵고 이런 정보를 파악한다 해도 큰 의미가 없다”며 “적합성 원칙은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변액보험에만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특정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보험사는 적합성 원칙 준수를 위해 ‘정보 미제공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알려야 하는데 이 같은 행위가 소비자에게 정보 제공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1만원 남짓한 여행자보험을 가입하는데 재산 상황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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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보장성 상품 전체에 적합성 원칙을 적용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은 투자성이 높은 변액보험과 연금보험 등 특정 보험계약의 경우에만 적합성 원칙을 일부 준용한다. 또 고객이 자신의 정보에 대해 서면 작성이나 교부를 원치 않을 경우 보험사가 서면의 역할이 무엇인지 설명만 하면 서면 작성이나 교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적합성 원칙 위반 시 판매자의 손해배상책임은 인정되지만 현재 국회에 발의된 금소법처럼 과태료 등 행정제재는 부과되지 않는다. 호주도 개인고객에 대해선 일반보험의 경우 적합성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판매 과정상 과실은 모두 보험사 책임?=금소법은 판매대리자와 중개업자가 소비자에게 손해를 유발하면 업무를 위탁한 직접판매업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최운열·이종걸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정부안과 달리 보험중개사가 소비자에게 발생시킨 손해까지 보험사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이에대해 보험업계는 보험산업 판매채널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법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977년에 마련된 현 보험업법 제102조는 보험대리점이나 보험설계사 등 판매대리업자의 과실로 발생한 계약자 손해를 직접판매업자인 보험사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대부분의 보험대리점이 영세해 배상 여력이 불충분했던 까닭에 보험사에 연대책임을 부과한 것으로 보험대리점의 규모가 급성장한 현재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 등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이나 법인보험대리점(GA)의 경우 보험사 이상의 규모와 손해배상 능력을 갖추고 있어 연대책임 부과 시 보험사에 불리한 구조”라며 “특히 GA는 보험사의 전속 대리점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다수 보험사의 상품을 취급하는 비전속 대리점이라 보험사가 관리나 지휘, 감독 권한 없이 책임만 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보험사와 판매위탁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보험중개사의 위법 행위까지 보험사가 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민·형사상 책임배분의 공평성이나 자기 책임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우려한다. 영국, 일본, 호주, 독일 등 해외에서도 보험대리점 등 판매자가 직접 손배배상 책임을 지는 법 체계가 마련된 상태다.
손해보험협회 한 관계자는 “설계사 수 100인 이상의 중대형 보험대리점 등 일정 규모 이상의 법인대리점이나 방카슈랑스(은행에서 파는 보험상품) 업무를 담당하는 은행 등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의 경우 위법행위에 대해 직접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예외조항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전속설계사나 대리점은 보험사가 책임을 지되 배상 능력이 충분한 판매대리업자에 한해 예외를 인정한다 해도 소비자 보호가 약화될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문업-판매업 겸영, 판매채널 혼란 우려=금소법의 또 다른 쟁점은 금융상품 자문업과 판매업의 겸영 허용 여부다. 최운열·이종걸 의원은 자문업과 판매업의 겸영 불가를 주장하는 반면 다른 법안은 자문업과 판매업의 겸영을 허용하되 양사의 임직원을 겸직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일반적인 자문업자의 판매업 겸영 문제가 판매채널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문업자가 판매업을 겸영하면 판매수수료가 높은 상품 위주로 자문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고 각 금융상품 판매채널에서 자문이 판매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 법인보험대리점이 자문업을 겸영하게 될 경우 자신보다 협상력이 낮은 중소형 보험사에 부당 지원을 요구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방카슈랑스 ‘25% 룰’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5% 룰이란 한 은행이 팔 수 있는 한 보험사의 상품 비율을 25%로 제한하는 제도로 방카슈랑스 도입 당시 은행들이 계열 보험사 상품만 집중적으로 팔면서 시행됐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자문업과 판매업을 겸영하면 은행이 판매할 수 없는 종신보험이나 자동차보험 등에 대해 자문서비스만 제공한 후 계열사나 제휴사 상품을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등 은행이 25% 룰을 합법적으로 회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문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자문업자의 상품 판매업 겸영 행위를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며 “겸영을 허용하더라도 방카슈랑스 25% 룰을 무력화하지 않는 대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