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회사 사무실 내 정수기는 예비 전원이 있는 한 쪽 구석에 밀려나 있다. 경영진들은 회사 정수기 위치 문제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수기는 단순히 물만 마시는 곳이 아니다. 정수기는 직원들이 교류하는 장소다. 직원들은 정수기 앞에서 그동안 뜸했던 동료를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상사의 험담을 늘어놓기도 하며 어젯밤 예능 프로그램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처럼 직원들은 사무실 책상이나 회의실에서는 엄두도 못 낼 대화를 정수기 주변에서 나누는 것이다.
기업들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정보기술(IT)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조직 전략을 수립하는 데 몇 년씩 투자한다. 하지만 정수기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세계적 미디어 융합기술연구소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혁신가인 벤 웨이버는 사소한 부분의 변화만으로도 직원들이 이전보다 행복하고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증명해냈다.
그는 MIT 연구진과 함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콜센터 상담원 80여명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 연구를 진행했다. 하루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휴식시간 15분을 줬을 때 기업 생산성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내용이었다.
연구결과 BOA 상담원들은 15분의 커피 타임을 가진 뒤 적어도 연간 1500만 달러(약 165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직률은 12%로 업계 평균 40%보다 상당히 낮았다. 스트레스 지수도 6%까지 감소시켰다. 그동안 BOA 경영진은 상담원들 간의 상호작용은 줄이고 업무 시간을 촘촘하게 배치하는 조직체계를 고집해왔다.
보통 기업의 경영자들은 "그 정도 성과를 내려면 전부 바꿔야만 하겠군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웨이버는 전면적으로 구조를 개편하는 대신 직원들이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회사 전반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찾는 방법은 빅데이터 분석에 있다. 웨이버는 BOA 실험에 앞서 상담원들의 성별, 나이 등 인구 통계학적 정보와 설문조사 데이터, 이메일 자료 등을 수집했다. 이어 이동거리, 목소리의 높낮이 등 인간 행동을 기록·분석할 수 있는 기기인 '소시오메트릭 배지' 데이터도 활용했다. 방대한 데이터, 즉 빅데이터를 분석해 BOA가 생산성 향상에 특정한 방법이 필요한 것으로 가설을 정한 뒤 실험을 통해 증명한 것이다.
실제로 구글, 페이스북 등 혁신적인 기업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 등을 연구하는 '인재 경영 팀'을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구글의 '피플 애널리스틱스'(People Analystics)팀은 직원들의 연봉이나 식사 종류가 회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한다. '구글가이스트'(Googlegeist)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직원들의 친밀도와 행복감을 파악, 회사 운영 방침에 반영되도록 한다.
웨어버는 기업이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며 긍정적인 조직을 구축하는 데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구글은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했는가'=벤 웨이버 지음. 배충효 옮김. 북카라반 펴냄. 336쪽/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