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박은옥의 딸, "나는 타투녀에 이혼녀인 문제적 여자지만…"

김고금평 기자
2016.05.14 03:05

[인터뷰] '다 큰 여자' 낸 정새난슬…"성장하고도 완료되지 않은 모습, 인정하고파"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이혼녀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는 정새난슬은 정태춘-박은옥 부부 뮤지션의 외동딸이다. 그는 최근 '다 큰 여자'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냈다. /사진=임성균 기자

둘째 큰아버지가 지어줬다는 이름 정새난슬(35). 새로 태어난 슬기로운 아기란 뜻의 네 글자 이름이다. 그는 “특이한 이름은 자의식 과잉의 시초를 알렸다”고 했다. 끝없는 자기애에 분출하지 않고선 견디기 어려웠던 내재화한 분열 의식은 자기규정에 갇히지 않고 다중 인격에 대한 열린 자세를 흡입하는 원동력이었다.

온몸에 타투를 새기고, 결혼 2년 만에 이혼한 뒤 19개월 딸을 데리고 싱글 맘으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당당함이 다중이의 첫 번째 그림자라면, 산후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시도한 연약한 감성은 숨겨진 다중이의 또 다른 그림자다.

중반까지 이어진 그의 삶에서 그가 한국 포크사에 굵직한 한 획을 그은 정태춘-박은옥 부부 뮤지션의 외동딸이라는 사실은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아는 이 부부 뮤지션은 서정과 의식, 의지로 수렴되는 삶의 좌표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새난슬은 자신을 ‘다 큰 여자’로 규정했다. ‘타투녀’, ‘뮤지션의 딸’ 같은 특정 이름표로 구속되기보다 성장하고도 완료되지 않은 모습을 인정하고 싶은 욕구를 담은 정의인 셈이다.

그가 동명의 책 ‘다 큰 여자’를 최근 내놓고 인터뷰 자리에 마주했을 때, 아우라가 남달랐다. 167cm의 훤칠한 키, 세련된 옷차림, 속사포처럼 내뱉는 어떤 답변에도 논리를 잃지 않는 날카로움까지 성장이 다 ‘끝난’ 이와 대화하는 듯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하나의 일관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채로 자랐어요. 부모님을 잘 아는 분들은 저와 부모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전 고통스러웠죠. 또래 집단과 어울리는 문화와 집에서 받는 문화 교육은 달랐으니까요. 저만의 화두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세 때 영국 유학에서 배운 조각은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미술가로서의 꿈을 접었다. 대신 그는 그곳에서 더 많은 철학적 고민과 마주해야 했다. 집에서 사회주의 미술이나 운동권 미술만 접하다, 밖에서 순수미술을 배우며 얻게 된 서브컬처에 대한 눈뜸은 자신을 더 어지럽게 만들기 충분했기 때문. 그는 “20대는 적성검사만 하다 끝난 것 같다”고 웃었다.

“전에는 목적성이 없는 예술은 매가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미지 자체로 보는 세상을 다시 배우니까 시야가 더 넓어졌죠.”

작가는 32세 늦깎이 나이에 불같은 사랑에 빠져 록밴드 멤버와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최고의 쇼로 그칠 뿐, 현실과는 달랐다.

“가끔 어머니가 부엌에서 만화 주제가를 곱게 부르는데, 그때 ‘저 여성도 꿈이 있고 재능이 있는데 무대에 못 서는구나’하고 느낀 적이 많았어요. 저도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노래할 때 물품 챙기고 물 갖다 주는 제 모습을 보니 ‘엄마 인생과 다르지 않구나’ 싶더라고요.”

이혼은 독이자 약이었다. 절망감이 몰아치며 바닥으로 내몰리는 느낌도 있었으나, 한편으론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믿고 해방감도 얻었다.

'다 큰 여자'는 몸은 성장했지만, 정신은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정새난슬 작가의 인생 고백서다. 그는 이혼 후 자신을 견인할 프로젝트를 위해 글을 쓰고 음악 작업에 매진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책은 저자가 얼마나 불량하고 이상한 여자인지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문제적 여자의 파란만장 멘탈 성장기’라는 부제를 붙인 것도 상처를 감추기보다 드러냄으로써 얻게 될 치유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젠가 나의 치명적인 결함들이 내가 제일 자랑스러워할 특질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썼다. 이혼과 산후 우울증을 거친 내쳐진 삶을 다시 견인할 프로젝트로, 그가 먼저 손을 댄 것이 음악이다.

책 출간과 동시에 내놓은 첫 동명의 정규음반을 두고 그는 “부모에게선 음악적 재능만 물려받지 못한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나 그가 적은 가사와 평범한 형태의 멜로디로 꾸린 11곡을 듣고 나선 그의 이력만큼 충격을 받았다. 고운 목소리는 어머니를 꼭 빼닮았고, 유유자적한 소리 속에 배어있는 깊이는 신인 뮤지션의 그것이 더 이상 아니었다.

번쩍이는 문재(文才)의 흔적에 놀라기가 무섭게, 음악의 깊은 공력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가 바라는 다중이 모델 그 자체였다. 다 큰 여자의 성장통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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