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보다 안전을 우선시 하겠다."
9일 카메라 앞에선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11월 5일 협력업체 직원이 작업 중 감전돼 결국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 정 사장은 두 달 여가 지나서야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앞으론 전기가 흐르는 전선에선 절대 작업을 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시지탄이다.
이번 사례를 한전만의 문제라고 볼 순 없다. 어찌보면 압축·고도성장으로 표현되는 대한민국 경제 성공신화의 어두운 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 고도성장기 한국은 그랬다. 야근은 당연했고 중요한 프로젝트가 생기면 밤샘작업도 불사했다. 회사가 돈을 벌어야 조직이 살고 가족들이 생계를 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문화가 한국이 단기간 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신화가 국민소득 4만달러를 향해가는 작금의 현실에도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과거 한국의 기업들은 '시간 단축'을 최고의 무기로 자랑해왔다. 투입하는 시간을 단축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게 한국식 사업방식이었다. 이는 경쟁자보다 적은 금액으로 사업을 따낸 한국기업이 이익을 낼 수 있는 절대적인 무기였다. 살인적인 연장근무와 밤샘작업은 한국인 만의 강점으로 포장했다. 옆자리 동료가 사고를 당해 들것에 실려나가도 그때뿐이었다. 그만큼 작업을 빨리 끝내는 게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덕분에 한국기업들은 비현실적인 일처리 속도를 자랑했다. 해외 거래처는 물론 경쟁사들도 혀를 내둘었다.
"크레이지 코리언(Crazy Korean)." 그땐 이게 진짜 칭찬인 줄 알았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게 아니다. 작업자의 안전은 뒷전으로 돌리고 오로지 효율만을 추구하는 한국의 비상식적인 기업문화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감전의 우려가 있으면 단전을 하고 작업을 하는 게 그들에겐 상식이다. 비용이 들더라도 안전을 먼저 확보하고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 단순한 상식이 그동안 한국사회에선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작금의 현실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중대재해 발생시 CEO(최고경영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나왔을까.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주52시간으로 묶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것도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런 것들이 그동안 한국사회가 상식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결방식 조차도 상식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단속과 처벌만으로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들은 결국 해법을 찾을 것이다. CEO가 처벌받지 않도록 꼼수와 편법을 찾는 데 시간과 비용, 인적자원을 쏟을 것이다. 결국 생산적인 쪽에 쓰여야 할 기업의 역량이 엉뚱한 곳에 낭비된다는 얘기다.
사람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게 비상식적인 것임을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구성원들이 창피한 것으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편을 가르고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상식에 도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