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이요? 올 겨울 날씨에 달렸죠"[우보세]

세종=김훈남 기자
2022.11.09 05:47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저녁 8시30분쯤 함부르크 시내 풍경.

"이 전쟁이 언제쯤 끝날까요?"

"미국 중간선거 같은 이벤트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여기 사람들은 올겨울 날씨에 달렸다고들 해요."

지난달 취재차 방문한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난 한 교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이 날씨에 달렸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 서방 국가의 경제 제재에 맞설 카드로 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을 무기화했다. 북반구의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올 겨울 날씨가 따뜻해야 러시아의 입지가 좁아져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얘기다. 이번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독일인의 시각이다.

에너지 위기는 독일 같은 유럽의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최근 올겨울 모든 공공부문의 실내 평균온도를 섭씨 17도(℃) 이하로 제한하고 실내 조명을 30% 이상 줄이기로 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사무실 온도를 제한하는 건 이명박 대통령 시절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2012년 8월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 수급 경보 '주의'가 발령되자 정부 청사 내 에어컨 가동을 중단했다. 2011년 9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까지 겪었던 터라 공공부문부터 전력 사용을 극도로 제한한 것. 이번 정부의 난방온도 제한은 10년 전 에너지 위기를 떠올리게 한다고 한다.

에너지 위기의 충격은 겨울철 난방에 그치지 않고 금융시장의 불안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전력공사가 발전자회사와 민간 발전사로부터 사들이는 일종의 전력 도매가격인 통합 SMP(계통한계가격)는 지난달 ㎾h(킬로와트시)당 253.25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9월 SMP 역시 234.75를 기록하며 기록적인 도매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SMP는 가장 마지막 단계 발전원인 LPG(액화석유가스) 가격이 좌우하는데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 전력 도매가에 고스란히 나타나는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2020년 이후 코로나19(COVID-19) 사태와 지난해 보궐선거, 올해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치솟은 국제에너지 가격을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전력은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했고, 이 때문에 정부가 보증하는 한전채가 채권시장에 쏟아지면서 회사채의 수요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최근 채권시장 경색 사태에서 레고랜드 채무 불이행 사태가 시장의 신뢰를 건드린 방아쇠였다면 한전의 적자와 그에 따른 한전채의 채권 수요 흡수는 그전에 쌓인 화약이었던 셈이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충격이 금융시장에서까지 나타난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했지만 연료비 연동제에 규정한 상한선과 물가 안정이란 명분에 밀려 충분히 하진 못한 상태다.

이제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올 겨울이 덜 춥길,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둘러 끝나길 기원해야 할 판이다. 그렇지 않다면 올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선 에너지 수입액 급증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와 국가신인도 저하를 감내해야 한다. 겨울철 마음 편하게 실내온도를 올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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