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 시장에서 '탄광 속 카나리아'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 위기가 감지될 때마다 등장한 표현이다.
이번 위기의 주인공은 미국 '사모신용'(Private Credit)이다. 사모신용 부실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국제유가까지 치솟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시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칫 2026년에도 2008년과 유사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을지 정부도 경계감을 높이고 있다.
1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19일 확대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미국 사모대출 부실 가능성 등을 살펴본다.
정부는 과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수준까지 번질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다만 국내 자금도 유입된 상태여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다른 것과 엮이면 트리거(방아쇠)가 되지 않겠냐는 우려는 있다"고 말했다.
사모대출로도 불리는 사모신용은 비은행 금융중개회사가 자금을 직접 빌려주는 형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문턱이 높아지자 급성장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2000억달러 수준이던 사모대출 펀드 운용자산은 현재 2조5000억달러 이상으로 확대됐다. 저금리와 AI(인공지능) 열풍에 따라 소프트웨어 테크 기업 중심으로 사모대출을 끌어 썼다.
사모대출 시장의 불안은 지난해 9월 트라이컬러(Tricolors)와 퍼스트브랜드(First Brands)의 사기·파산으로 시작됐다. 특히 지난달 중형 이상의 운용사인 블루아울(Blue Owl)이 사모대출 펀드 환매를 사실상 중단하자 불안감은 증폭됐다.
이 와중에 미국의 시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는 AI 발전이 소프트웨어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JP모건체이스는 소프트웨어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일부 사모대출 펀드의 담보자산 가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런 흐름 자체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관련 펀드 환매 중단,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이어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사하다는 분석이 월가를 중심으로 나온다. 공교롭게 당시 배럴당 147달러로 역대 최대수준으로 치솟았던 국제유가 상황도 닮았다.
물론 은행 중심이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사모대출은 분산돼 있다는 점에서 시스템적인 위기로 전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번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도 있는만큼 경계감을 갖고 주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의 역할은 금융위기 가능성을 미리 진단하는 것"이라며 "시나리오별 상황 대처를 어떻게 조기에, 적기에 할 것인지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사모대출펀드 부실 경고음이 잇따른 가운데 국내 기관투자자 대부분은 수년 간 펀드 환매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KIC) 각종 공제회를 비롯해 증권사, 보험사 등은 최소 17조원 이상을 펀드 만기까지 묶어둬야 하는 폐쇄형에 가입해 즉각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금융당국은 당장 펀드 손실이 현실화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향후 AI(인공지능) 버블이 터지면 유동성 위기로 번질 수 있단 경계감이 확산하고 있다.
◇최소 17조원 이상 투자, 소프트웨어 비중 20~50%.. 국민연금·KIC·보험사까지 수년 돈 묶여
18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해외 사모대출펀드의 국내 투자금이 지난해 말 기준 17조원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말 판매 잔액 11조8000억원 대비 44% 늘어난 규모다. 이 가운데 개인 판매 잔액은 4797억원으로 2년만에 3배 이상 늘었다. 사모대출펀드는 일정 자격요건을 갖추고 등록한 개인 전문투자자만 가입 가능하다.
금감원은 12개 증권사가 제출한 사모대출 재간접펀드의 투자 내역을 정밀 분석 중이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블루아울, 블랙록 등이 환매 제한 조치를 했지만 아직 국내 투자자 피해는 없는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4일 10개 증권사 임원을 소집해 사모대출펀드 리스크 관리를 당부했으며 지난달 26일에는 이찬진 금감원장이 보험사 CEO( 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 "익스포져(위험노출액) 관리를 선제적으로 할 것"을 직접 주문했다.
문제는 잇따른 경고음에도 국내 투자자들이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개인 투자자의 경우 분기마다 환매 요청이 가능한 개방형 펀드에 가입했으나 투자금이 훨씬 많은 기관 투자자는 폐쇄형으로 가입해 부실이 나도 중도환매가 불가능하다. 이번에 일부 환매 제한 조치가 들어간 블루아울 펀드의 폐쇄형은 만기가 8년 전후다. 통상 3~4년은 투자 기간, 나머지 4년 전후로는 회수 기간으로 투자금이 장기간 묶이는 상품이다.
기관 투자자들은 연 10~12%의 기대수익률을 보고 이 펀드에 투자했다. 국내 운용사나 증권사를 통해 재간접으로 투자한 경우엔 환헷지 등의 비용 차감시 연 5~8%의 수익을 내는 상품이었다. 국내 투자처 대비로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지난 2023년 이후 투자금이 몰린 것이다. 부실 가능성이 거론되는 소프트웨어 기업 투자 비중은 평균 20~25%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KIC, 공제회 등 '큰 손' 투자자들은 직접 혹은 재간접으로 대규모 투자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체투자가 활발한 증권사, 장기운용을 해야 하는 생명보험사 등도 조단위 투자를 했다. 금융당국이 파악한 17조원의 투자금은 재간접펀드 규모이며 국내 기관 투자자가 해외 펀드에 직접 투자한 금액을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IMA 본격 가동전 터져 그나마 다행"..AI 버블 터지면 증시 20% 전후 조정 전망도
JP모건체이스가 최근 소프트웨어 업계의 부실 경고를 반영해 사모대출펀드의 담보자산 가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국내 기관 투자자들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한 대형 금융사의 대체투자 담당자는 "위기가 현실화 하려면 기업 부도율, 회수율이 중요한데 운용사를 통해 파악해 보니 아직 부도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AI 때문에 구독형 서비스 업체들이 안 좋아질수 있다는 전망에 포트폴리오에서 그런 업체 비중이 어느정도인지 세밀하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미국-이란 전쟁으로 사모대출펀드의 위험성이 덜 부각되고 있지만, 돈을 빌린 기업의 유동성이 마르게 되면 위기가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당장의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없으나 신규 펀드 판매를 제한하고 모니터링 강화를 주문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증권사 IMA(종합투자계좌)로 개인 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전에 사모대출펀드 경고음이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에서는2008년의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사모대출펀드가 기업에 직접 대출을 한 뒤 해당 대출채권을 담보로 은행이나 다른 금융회사에 추가 차입해 대출을 늘리는 방식은 2008년 서브프라인 모기지 사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만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 중간선거까지 연준이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한다면 부실이 현 수준에 그칠 수 있다"며 "그럼에도 AI 버블로 금융시장이 20% 안팎의 조정을 받을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진단했다.
미국발 사모대출펀드(PDF) 위기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 증권가도 위험에 노출돼 있다. 금융당국이 투자·판매 점검에 돌입하면서 손실·제재 리스크가 현안으로 부상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증권사별 자료징구담당자(CPC)로부터 넘겨받은 투자현황 자료를 중점 검토하면서 사모대출펀드 관련 추가 질의를 진행했다. 증권사 임원진을 직접 불러 리스크 관리 강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 12곳의 해외 사모대출펀드 판매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7조원으로 전년 대비 23% 늘었다. 2023년 말(11조8000억원)에서 44% 증가한 규모다. 특히 개인 판매잔액은 지난해 말 4797억원으로 2년새 3배 이상 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중동사태 여파로 세계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펀드런(대량환매사태)'이 나타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해외 사모대출펀드 투자자는 장기간 돈을 묻어둘 기관이 주류여서 단기간에 환매요청이 폭증하긴 어렵지만, 블루아울처럼 환매창구를 닫는 운용사가 추가로 발생할 경우 시장 전반의 불안감이 가중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요 투자사로는 약 1조5000억원을 사모대출펀드에 투자한 한국투자증권이 거론된다. 그중 일부는 블루아울로 유입됐다. 다만 한투증권은 운용 중인 상품이 환매중단 사건과 연관성이 높지 않고, 삼성증권은 국내 투자자로부터 들어온 환매요청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로선 익스포저(위험노출)가 잘 보이지 않고, 일반투자자 판매금액도 적다"면서도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시기에 미국 사모대출에 적신호가 켜졌으니 미리 대응하자는 차원에서 투자현황 등을 살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불완전판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투자설명서 등 판매절차를 점검하라는 지시도 금감원의 주문에 포함됐다. 해외 사모대출펀드 상당수는 비상장사에 대출을 내주는 탓에 가치평가가 어려운데, 투자 위험도를 과소평가해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광고했다면 바로잡으라는 취지다.
이 밖에 금감원은 해외에서 사모대출펀드 자금이탈이 나타나는 와중에 국내에서 관련 상품을 파는 게 맞는지에 대한 검토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판매중단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지희·정태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인플레 우려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가 지연될 수 있겠지만, 시중 유동성 환경이 대체로 완화적"이라며 "일부 비우량 차입기업을 중심으로 시장에 단기적 변동성을 초래할 수 있겠지만, 금융시스템 전반의 불안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국내 영향에 대해선 "투자자에게 손실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고, 판매사는 불완전판매·배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면서도 "지난해 3분기 증권사 상위 12곳의 별도 자본 합계가 77조4000억원, 누적 순이익이 6조4000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국내 판매잔액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규모"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