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마다 등장한 '실용 매파' 신현송…고환율·부채·물가 해법 찾을까

최민경 기자
2026.03.23 16:28
[서울=뉴시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이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에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을 지명했다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제공) 2026.03.22.

2008년 전 세계가 장밋빛 낙관에 젖어 있을 때, 홀로 금융시장의 '폭풍'을 경고했던 학자가 있었다. 2006년부터 미국발 금융위기를 경고하며 '예방주사'를 놨던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다. 외환 변동성 대응을 위한 거시건전성 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신 후보자는 이번엔 물가·환율·가계부채 '삼중고'에 빠진 한국 경제의 구원투수로서 한국은행의 키를 잡는다.

신 후보자는 국제금융 분야의 대표적 학자 출신 정책 전문가다.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와 프린스턴대 교수를 거쳐 2014년부터 국제결제은행(BIS)의 경제자문역 및 조사국장, 통화경제국장 등을 역임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을 지내며 외환 건전성 정책에도 관여하는 등 이론과 정책 경험을 모두 갖췄다. 국제금융 네트워크와 정책 조정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다.

신 후보자는 2006년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정확히 예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외환위기에 놓일 뻔 한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짚고 안전망을 설계했다. 단기외채 차환 실패와 외국인 자금 이탈이 외환 불안을 키운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물환 포지션 한도 규제, 외환건전성 부담금,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등 이른바 '외환 건전성 3종 세트' 도입에 기여한 것이다. 이 같은 거시건전성 중심 시각은 이후 한국의 금융안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재경회·한국개발연구원(KDI)이 펴낸 '금융 선진화의 비전과 도전'에서 "자금시장 쪽에서 생긴 문제가 어떻게 외환 쪽으로 전이돼 문제가 일어나는지 정확히 문제를 찾아낸 사람은 당시 신현송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라며 "'외환 규제 3종'의 근거를 추적해 밝혀낸 사람"이라고 밝혔다.

중동 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기록하고 외국인 자금 유출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키맨'으로 그가 지목된 배경엔 이 같은 전문성이 있다. 시장에선 그가 물가와 금융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는 '실용주의적 매파'로 통화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고 있다.

고환율에 대해서는 수출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보단 금융안정 관점에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신 후보자는 달러 강세가 무역 금융 비용을 상승시켜 글로벌 교역량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달러 유동성 경색과 외화부채 부담을 키워 금융시스템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원화 약세가 확대될 경우 금리 뿐 아니라 거시건전성 정책과 외화 유동성 관리 수단을 병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리 정책에서는 매파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신 후보자는 인플레이션이 일부 품목에서 시작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속성이 있는 만큼 초기 단계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과잉 유동성과 자산가격 상승이 나타날 경우 소비자물가가 안정돼 있어도 금리 인상으로 금융 불균형을 억제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다만 공급 문제로 인한 물가 상승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신 후보자는 지난 16일 BIS 기자간담회에서 중동 사태에 따른 중앙은행의 대응에 대해 "이론적으로 공급 충격이 일시적이면 통화정책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 영향을 지켜보는 것이 교과서적 사례"라고 언급했다. 유가 급등과 같은 일시적 충격에는 통화정책으로 즉각 대응하기보다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선 이를 두고 수요 과열과 기대 인플레이션 확산에는 긴축적으로 대응하되 외생적 충격에는 관망하는 '조건부 매파' 성향으로 해석한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유가 상승은 부담 요인이지만, 수요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은 크지 않은 만큼 유가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위해서는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에 대해선 기존 한은의 입장과 비슷한 입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거 과도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예고했던 만큼 거시건전성 정책을 통해 버블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을 펼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 후보자를 지명한 배경에도 이러한 정책 성향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고환율과 고유가, 글로벌 금융 변동성 확대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환율·물가·금융안정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국제금융 전문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지나치게 완화적 통화정책 기대를 차단해 시장 신뢰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정책 신뢰도 측면에서도 긍정 평가가 이어졌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한은 총재는 글로벌 차원의 신뢰와 소통 능력이 중요한데 신현송은 존재감 자체"라면서 "이명박 정부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출신이지만 능력 중심 인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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