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특구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지역 특례 제도를 운영해 왔다. 2025년 4분기 기준 전국 산업단지는 1359개에 달하며 부처별로 운영 중인 각종 특구는 약 2437개(지정 면적 기준)를 넘어섰다. 지역 발전을 위해 도입된 해당 제도는 시대적 요구와 정권의 철학에 따라 규제 철폐, 기술 실증, 세제 혜택 등 그 형태를 달리하며 진화해 왔다.
역대 정부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각기 다른 핵심 기제를 활용해 왔다.
박근혜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역 전략산업 육성' 차원에서 규제프리존을 도입했다.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별로 27개 전략산업을 선정, 특정 산업에 대해 덩어리 규제를 한꺼번에 푸는 '메뉴판식 규제 특례'를 지향했다.
△부산(해양플랜트, 사물인터넷) △대구(자율주행차, IoT) △전남(에너지신산업, 드론) 등이 대표적 사례다. 지역 주도의 상향식(Bottom-up) 모델을 처음 제시했다는 의의가 있으나 규제프리존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법적 근거 마련에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는 '신산업 샌드박스를 통한 혁신성장 실증'을 모토로 규제자유특구를 마련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광역 지자체를 대상으로 기존 법령에 가로막힌 신기술을 일정 기간·지역에서 실증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경북(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부산(블록체인) △강원(디지털 헬스케어) 지정이 대표적 사례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024년 기술 이전과 매출 확대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특구 내 연구소기업들의 휴·폐업 관리 등 사후 관리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는 '파격적 세제 혜택을 통한 민간 투지 유치'를 중심에 뒀다. 기회발전특구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2월 기준 총 46개 지역이 지정됐다. '기업의 이전 확약'이 필수로 기업이 실제로 얼마를 투자하고 몇 명을 고용할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포항(이차전지) △구미(반도체·방산) △여수·광양(이차전지·수소)가 대표적 사례다. 과거 특구들이 규제 완화에 집중했다면 기회발전특구는 상속세 감면, 가업승계 특례 등 기업이 지방으로 내려갈 '실질적 돈의 유인'을 제공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재명 정부도 5극3특 중심의 메가특구를 제안했다. 로봇, 재생에너지, 바이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을 중심으로 지역 경쟁력을 발전시켜나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러한 특구 정책의 확장은 '분절적 운영'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부처마다 유사한 특구를 경쟁적으로 지정하면서 지자체는 행정력을 낭비하고 정책 효과는 희석되는 현상이 발생해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57개 유형의 특구 관련 법령 중 성과 평가 조항을 명시한 경우는 19.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정 해제 요건이 구체적이지 않아 성과가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무늬만 특구'로 남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구가 지역을 살리는 '기회의 땅'이 될지, 예산만 축내는 '이름뿐인 제도'로 남을지는 향후 도입될 메가급 특구들의 실질적인 투자 유치 실적과 성과 관리 시스템 구축 여부에 달려 있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지정부터 해제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적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기업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메가특구' 청사진에 대해 '네거티브 규제(금지할 사항만 규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를 전면에 내건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과거의 수많은 특구와 지역개발 정책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제 기업의 필요에 집중해서 정부의 지원과 국가적 자원을 쏟아야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이 대통령의 메가특구 도입 방안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일단 기대감은 적지 않다. 정부가 선정한 4대 분야, 즉 로봇과 바이오, 재생에너지, AI(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자체가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와 궤를 같이 하고 있어 적절했다는 평가다.
특히 네거티브 규제는 기업들이 그동안 원했던 바다. 이종명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산업성장본부 상무는 "법률에서 금지한 사항 외에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 도입되면 그동안 규제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어온 신산업 분야에서 기업의 투자와 사업화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성과로 연결되기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고 본다. 역대 거의 모든 정권에서 추진해왔던 각종 특구가 유명무실해져왔던 탓에 이번에는 달라야한다는 시각이다.
우선 '명분'보다는 '실리'를 선택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가 자칫 '정치적 나눠먹기'로 변질돼 기업들이 진짜 원하는 지원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대한상의가 2024년 지역경제 전문가 5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구제도 개선방안 조사'에 따르면 '잘 운영되고 있다'고 답한 전문가들은 8%에 불과했다. 정치적 이유로 지역별 나눠주기식 특구 지정 등 역량이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면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그러면서 특구 수요자인 기업의 입장에서 제도를 바꿔야한다는 진단을 내놨다.
A그룹 관계자는 "제1의 목표는 '지역균형발전'이 아니라 '국가핵심산업 발전'이 돼야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정치적 논리에 밀려 자원을 분산 투자하게 될 경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거대 클러스터 형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재 확보도 핵심 포인트다. 첨단산업에서 글로벌 경쟁은 곧 '인적 자원 전쟁'이기 때문이다. B그룹 관계자는 "관건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제한 뒤 "우수한 인재들이 지역 메가특구 내 기업에서 일을 하고 싶은 환경 조성돼야 한다"면서 "출산과 교육, 문화 등 전반에 걸친 정부의 의지와 정책 지원 등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과감한 지역맞춤형 정책으로 정부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메가특구의 성공은 단순히 특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세제 혜택 등 비용 절감과 행정처리 속도, 인재가 모일 수 있는 환경 등을 얼마나 제대로 구축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C그룹 관계자는 "세계 각국이 장점으로 내세우는 낮은 인건비, 투자 유치를 위해 제공하는 대규모 보조금과 세제지원 등을 고려하면 국내 투자 유인은 사실 크지 않다"며 "메가특구가 이에 준하는 혜택을 제공해야 기업들이 '책임감'이 아닌 '수익성'을 이유로 국내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