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반복적 담합 기업에 대한 '인적·구조적 퇴출' 카드를 꺼내든 건 이재명 대통령의 담합 근절 의지와 관련이 깊다. 담합을 '암적 존재'로 규정하며 반시장적 행위를 반복하는 사업자의 시장 퇴출 방안을 검토해보란 이 대통령의 주문 약 2달 만에 나온 대책이다.
공정위는 나아가 사업구조적 문제로 반복적 담합이 이뤄지는 경우 기업분할, 지분매각, 사업매각 등의 초강력 구조적 조치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23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담합 등 중대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기업분할, 지분매각, 사업매각 등 강력한 구조적 조치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담합이 반복되는 산업에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시장 퇴출' 수준의 구조적 조치까지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구체적인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해당 사업을 제3자에 매각하는 방안 등도 포함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어느 분야까지 구조적 조치를 할지 여부는 검토 중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가 포함된다고 말하기엔 이른 상태"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담합을 뿌리뽑겠다는 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시장 지배력을 악용한 담합 행위는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시장 신뢰를 훼손하며 국민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라며 "담합 이득을 훨씬 넘어서는 무거운 제재가 뒤따라야 하고 제재의 내용도 형사 처벌 같은 형식적 제재가 아니라 경제 이권 박탈이나 경제적 부담 강화 같은 실질적 경제 제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반시장적 행위가 반복될 경우 아예 시장에서 영구 퇴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시장 교란 세력의 발본색원을 위해 범정부 차원의 강력하고 또 신속한 대처를 당부 드린다"고 했다.
실제 이날 공정위가 내놓은 방안에는 담합 반복 기업의 시장 참여 자체를 제한하는 방안도 담겼다. 정부 등록·허가가 필요한 업종의 경우 담합을 반복하면 공정위 요청을 통해 관계부처가 등록 취소나 영업정지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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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건설산업기본법은 건설사업자가 9년 내 2회 이상 담합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을 경우 등록을 말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공인중개사법도 2년 내 2회 이상 담합 관련 제재를 받을 경우 중개사무소 등록 취소가 가능하다. 이 같은 규정을 담합이 자주 발생하는 주요 업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공정위는 3년 10개월 간 교과서와 책 등에 쓰이는 인쇄용지 가격을 담합한 6개 제지사에 총 3383억2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6개사는 △한국제지 △한솔제지 △무림에스피 △무림페이퍼 △무림피앤피 △홍원제지 등이다.
특히 공정위는 이들 회사가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법 위반을 하는 등 담합 행위가 관행적으로 고착화됐단 점을 고려해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도 내렸다. 공정위가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린 건 2006년 4월 밀가루 담합 건 이후 20년 만이다. 이에 따라 6개 제지사는 독자적으로 인쇄용지 가격을 재결정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주 위원장은 "축소되는 인쇄용지 시장, 낮은 수익성, 공급과잉 등 제지 산업이 겪고 있는 난관을 기술 혁신과 신사업 개척 등 생산적 경쟁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을 제한하고 소비자 등 다른 시장 참여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담합으로 대처하고자 했던 불공정 행위"라며 "이런 중대 법위반 행위에 대해 엄정한 과징금 부과와 함께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부과함으로써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될 때까지 감시와 지도를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