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KBS 홍주연 아나운서는 난데없는 해명의 자리를 가져야 했다. 이날 열렸던 KBS1 교양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의 기자간담회에서였다. 최근 방송인이자 KBS의 선배 아나운서였던 전현무와 3월 결혼설, 5월 결혼설에 휘말렸던 홍주연 아나운서는 관련 이슈에 당혹스러움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아무래도 예능이고 방송적인 측면에서 과장돼 나가고 기사가 나는 부분이 있다”며 “속상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당황하긴 했다.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겪어보는 중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고 심경을 전했다. 전현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수 정재형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홍주연 아나운서와의 열애설이나 결혼설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임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월부터 3월에 이르기까지 전현무와 홍주연 아나운서의 관계는 마치 결혼이라도 할 것처럼 알려져 왔다. 스튜디오 안에서 MC와 패널들이 농담으로 한 이야기들이 보도자료의 형태로 왜곡되고, 심지어는 이를 오해할 것처럼 구성하는 언론들의 행태로 비화했다. 결국 두 사람은 주변의 반응을 진화하기에 나섰고, 이 모든 것이 ‘방송용 썸’이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KBS2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가 있었다. 방송은 원래 정교한 대본과 설정에 의해 움직이기에 전현무와 홍주연 두 사람의 관계를 계속 언급하고, 오해할 만한 관계로 재생산하는 데는 명백하게 제작진의 의도가 개입돼 있었다. 최근 이러한 경향은 누리꾼에 의해 ‘방송용 썸’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방송용 썸’은 실제 마음은 다를 수 있지만, 방송에서만큼은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로 두 사람을 설정하는 방송용 장치를 말한다. 예를 들면 과거 SBS 예능 ‘X맨’에서 출연자들이 작정하고 밀어주던 김종국과 윤은혜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다. 철저하게 계산된 토대 위에서 제작진은 두 사람의 관계로 서사를 만들고 이는 화제성과 시청률을 만들어낸다.
최근 TV를 보면 ‘방송용 썸’을 설정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전현무와 홍주연 아나운서의 관계 외에도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배우 김승수와 양정아의 관계를 비슷하게 설정했다.
두 사람은 네 시간 차로 태어난 동갑내기로 배우로서 네 작품 정도를 같이 한 인연이었다.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재회한 두 사람은 커플 교복 데이트를 하는가 하면, 스킨십도 하면서 시청자의 관심을 모았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 제작진은 ‘연애세포를 자극한다’는 핑계로 홍보수단에 사용했고, 역시 마치 날이라도 잡을 것 같은 기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연말 SBS ‘연예대상’에서 수상한 김승수는 양정아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송용 썸’, 이를 조금 더 곱지 않게 보는 용어 ‘썸 장사’는 지금 리얼리티 예능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자연스러움이 주도해야 할 리얼리티 예능의 분위기를 제작진의 설정과 홍보로 무색하게 한다는 점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과거 여러 시청자들의 성화에도 연인 관계인 개그맨 김준호와 김지민이 금방 결혼할 것 같은 상황을 다수 만들면서 ‘유사 결혼 관계’로 설정했다. 하지만 2년이 넘게 이들의 결혼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방송용 썸’의 단점은 시청자들의 피로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프로그램 중 관계는 보도자료를 통해 확산되고, 역시 이러한 이슈에 편승하려는 언론의 등을 타고 퍼져나가 시청자들의 ‘리얼리티 혐오’를 부추긴다. 과거 완전한 설정 아래에서 진행되는 쇼 형태의 버라이어티는 ‘모든 것이 설정이고 연기’라는 공감대 아래 이뤄졌지만, 리얼리티는 조금 더 진짜의 감정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혼동하게 할 수 있다.
결국 일부 예능 제작진들은 이렇게 시청자의 몰입이 큰 리얼리티 예능의 맹점을 타고 들어간다. 사람의 진솔한 감정을 탐구할 시간에 자극적인 설정으로 빈약한 구성을 덮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송용 썸’에 감정을 싣고 따라가는 시청자들은 결국 정해진 결말에 다다라 마치 드라마에서 주인공에게 배신을 당한 것보다 더한 상처를 받는다.
이러한 ‘방송용 썸’ 이를 이용한 ‘썸 장사’는 유행처럼 퍼지는 중이다. 채널A 예능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에서는 배우 김일우와 박선영의 관계가 이렇게 그려지고, SBS ‘오래된 만남 추구’는 배우 황동주와 개그우먼 이영자의 관계를 이렇게 상정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실제 진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현재 제작진이 나서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이전 ‘썸 장사’의 기운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리얼리티의 정수를 파고들려는 의지는 없고, 알맹이가 없는 내용을 화제성으로만 포장하려는 제작진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의도에 편승하는 일부 출연자 그리고 이를 과장해 홍보하는 방송사가 있다. 바깥에는 의심 없이 이를 확산하는 언론이 있다. ‘썸 장사’의 콤비 플레이다. 이러한 ‘가짜 연애’가 만연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오랜시간 그들의 감정에 진짜를 기대한 시청자들뿐이다.
리얼리티 예능 유행이 어느덧 15년이 넘는 시간이 거듭되고 있다. 경쟁은 격해지지만, 계속 대안은 없다. 마치 삭아 벌어지는 구멍에 땜질을 하듯 화제성에만 집중하는 일부 예능의 행태가 K-콘텐츠의 질적 하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