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산업적 동력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20세기 초엔 스타 시스템과 다양한 장르를 내세웠다면, TV의 도전에 맞서 스펙터클 전략을 구사했고 블록버스터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21세기는 단연 프랜차이즈다. 마블 유니버스의 등장은 대표적이며, 속편과 프리퀄과 리메이크가 쏟아졌다. 2024년 북미 시장을 살펴보면 흥행 10위권의 작품들은 모두 프랜차이즈 무비였다. 작년만 그런 건 아니었다. 최근 10여 년 동안 흥행 톱 10 중 적어도 7~8편은 항상 프랜차이즈 무비였다.
그 중심에 디즈니가 있었다. 마블과 스타워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그들은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했고, 픽사 스튜디오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클래식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은 실사화되었고, 새로운 관점으로 원작을 재해석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줄여서 ‘PC’로 부르는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성별이나 인종 혹은 종교나 국적 등에 대한 차별적 태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물론 이전에도 올바른 영화적 표현에 대한 흐름은 있었지만, 디즈니의 시도처럼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는 없었다.
칭찬받은 영화들도 있었다. 수많은 종의 동물들이 모여 사는 세계를 그린 '주토피아'(2016)는 ‘다양성’에 대한 훌륭한 애니메이션이었다. '블랙 팬서'(2018)와 '캡틴 마블'(2019)는 백인 남성 중심의 마블 유니버스에서 벗어나 유색 인종과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마동석이 출연한 '이터널스'(2021)는 남녀와 다인종이 잘 어우러진 캐스팅의 영화였다. '모아나'(2016)의 주인공은 폴리네시아인이었다.
반면 몇몇 영화는 쉽지 않았다. '인어공주'(2023)는 대표적이다. 안데르센의 동화를 토대로 한 애니메이션 '인어공주'(1989)는 침체를 겪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르네상스 시기로 이끈 작품이었는데, 34년 만에 실사 버전의 '인어공주'가 나왔다. 논란의 핵심은 캐릭터의 피부색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선 붉은 머리의 귀여운 백인 소녀였던 인어공주는 실사 버전에서 레게 머리를 한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되었다. 원작 동화의 묘사나 애니메이션 버전의 인어공주와 너무 다른 이미지에 관객들은 큰 거부감을 드러냈고, 그럼에도 왕자는 전형적인 백인 미남이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인어공주의 자매들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부분에 대해서도, 작위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그리고 '백설공주'다.
영화사상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를 실사화한 '백설공주'는 역시 주인공 캐릭터의 인종 이슈로 논란이 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에서 마리아 역으로 각광 받았던 레이첼 지글러가 백설공주 역을 맡았는데, 라틴계라는 점이 초점이었다. 이 이유로 개봉 전부터 찬반이 오가던 '백설공주'는 극장에 걸린 지금도 여전히 ‘논란중’이다.
리메이크엔, 특히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바꾸는 과정엔, 대중의 이중성에서 비롯된 미묘한 지점이 있다. 관객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익숙한 쾌감을 놓지 않는다. '알라딘'(2019)이 대표적이다. 애니메이션의 자스민과 흡사한 나오미 스콧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한편으론 지니 캐릭터가 흑인으로 바뀐 부분에도 (윌 스미스의 뛰어난 연기 덕도 있겠지만) 만족한다. 익숙함과 새로움. 명확하게 그을 순 없지만, 대중이 허락하는 어떤 ‘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백설공주'는 그 선을 넘어선 영화다. 이 영화는 원작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인종적 다양성을 통해 21세기의 테마를 담아내려 한다. 백설공주뿐만 아니라, 여왕 그림하일드(갤 가돗)를 호위하는 병사는 흑인과 동양인이다. 한편 백마 탄 왕자 대신 가난 때문에 도적이 된 조나단(앤드류 버냅)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는 잘생긴 백인 남성이다. 그림 형제의 원작에 의하면 중세 시대 유럽이 배경일 텐데, 이러한 인종적 구성은 현실적이지 않다. 지나치게 기계적인 구성이며, 일종의 강박인 셈이다.
서사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백설공주는 여왕의 압제에 맞서는 민중의 지도자처럼 등장하는데, 과연 이러한 설정이 관객의 요구를 반영한 것인지 의문이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캐릭터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선 깊이 있는 숙고와 재해석이 필요하며, 그 결과 공감과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PC주의’ 영화들은 관객을 계몽하기 위해 정치적 메시지를 섣불리 내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백설공주'도 그러한 패착을 두었다.
젠더와 인종과 직업과 종교와 그 외의 수많은 이슈들에 대하 우리들의 감수성이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정치적 올바름’의 흐름은 분명 지지할 만하며,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동력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PC가 현실과 관객을 무시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PC는 때론 검열이 되어 예술적 표현을 억압하기도 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올바른’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허상이며, 어쩌면 그것은 엘리트들의 허위 의식일 때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공감과 설득력이 관건이다. 적어도 대중영화를, 특히 블록버스터를 만든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