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열린 SBS ‘연기대상’. SBS는 2026년을 겨냥한 신작 드라마를 연례행사처럼 공개해오고 있는데, 2025년 시상식도 그랬다. 많은 작품이 베일을 벗었다. 소지섭의 복귀작인 ‘김부장’, 유연석이 출연하는 ‘신이랑 법률사무소’, 김지원이 출연하는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임지연이 출연하는 ‘멋진 신세계’ 등이 공개됐다.
눈길을 모았던 것은 안보현 주연의 ‘재벌X형사’ 시즌 2, 장나라 주연의 ‘굿파트너’ 시즌 2였다. 두 작품은 나란히 2024년 방송돼 SBS 드라마의 인기를 이어갔던 시리즈였다. 각각 ‘재벌X형사’가 11%, ‘굿파트너’가 17.7%까지 시청률이 올랐다.(이하 닐슨코리아 집계) 이날 공교롭게도 SBS 연기대상의 영예 역시 ‘모범택시 3’의 김도기 역 이제훈에게 돌아가 시즌제 드라마의 위세는 더욱 높았다.
기존의 작품군에 이제 두 작품이 추가되면서 SBS는 ‘시즌제 드라마 왕국’이라는 새로운 별칭을 얻게 됐다. MBC가 1990년대 ‘드라마 왕국’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KBS의 경우는 ‘사극의 왕국’이라는 별명이 있었다면 SBS는 ‘시즌제 드라마의 왕국’이 된 셈이다. 그 폭 역시 넓다. 의학물에서 수사물, 액션물, 법정물까지 다채로움도 입었다.
‘굿파트너’는 2024년 7월부터 9월까지 장나라와 남지현 주연으로 방송된 작품이다. 이혼 관련 소송이 천직인 스타 변호사 차은경(장나라)과 이혼 소송 담당은 처음인 한유리(남지현)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이혼 변호사 출신인 최유나 작가의 살아 숨 쉬는 대본과 함께 때로는 라이벌로, 때로는 멘토와 멘티로 서로를 자극하고 위로하는 두 변호사의 워맨스는 그해 장나라의 연기대상 수상까지 이끌었다.
‘재벌X형사’는 그해 1월부터 3월까지 선보였다. 철부지로 설정된 재벌 3세가 갑자기 강력팀 형사가 되는 이야기다. 보통 가진 게 없어 고생을 자처하는 다른 공권력과 달리, 돈을 이용한 ‘플렉스(FLEX) 수사’는 이 작품의 차별점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주인공의 파트너가 바뀐다. ‘굿파트너’에는 남지현 대신 ‘선재 업고 튀어’로 스타덤에 오른 김혜윤이, ‘재벌X형사 2’에는 박지현 대신 정은채가 출연을 확정했다.
SBS는 2010년대 후반부터 차곡차곡 시즌제 드라마를 모아놓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이 창궐하면서 8~12회 정도의 시즌제 드라마가 서서히 낯설어지지 않을 시점이었다. 시작은 한석규 주연의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였다. 인적이 드문 돌담병원을 중심으로 의료인의 본령을 지키며 후배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김사부(한석규)와 그가 맞닥뜨리는 다양한 사연이 주를 이뤘다.
2017년 막을 내린 시즌 1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가 한창일 당시 시즌 2, 2023년 세 번째 시즌이 이어졌다. 뒤는 2020년 ‘펜트하우스’ 시리즈가 이었다. 이른바 ‘막장의 대모’로 불리던 김순옥 작가의 자극적인 세계관에 선역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피카레스크 서사가 안방극장을 피로 물들였다. 시즌 2, 3이 2021년 이어졌다. 역시 김소연을 연기대상으로 밀어 올렸다.
2019년 시작한 ‘열혈사제’ 시리즈도 있었다. ‘펀치’ ‘소년시대’ 등의 이명우 감독 작품으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신부가 주먹으로 악을 응징한다는 독특한 설정에 이하늬, 김성균 등 탄탄한 주연진이 눈길을 끌었다. 2024년 시즌 2로 거듭나 향후 시즌제가 이어질 초석을 닦았다. ‘모범택시’ 시리즈 역시 2021년을 시작으로 2023년, 지난해 2, 3를 연속방송했다. 실화에 바탕을 둔 부조리를 다채로운 이제훈의 부캐릭터가 해결하며 고구마 뒤 사이다를 안겼다.
이 밖에도 SBS는 김래원이 주연을 맡은 ‘소방서 옆 경찰서’ 시리즈도 두 번째 시리즈까지 내놓았다. 여기에 ‘재벌X형사’ ‘굿파트너’까지, 본격적으로 굴리는 시즌제 IP(지식재산권)가 꽤 많아졌다. 반 농담 반 진담으로 “SBS의 한 해 편성은 이 시즌제 작품만 적절히 굴려줘도 1년이 문제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진화하는 생물들처럼, 드라마의 형식 역시 환경에 따라 바뀌고 있다. 이러한 SBS의 ‘시즌제 드라마 왕국’의 구상에는 검증된 시나리오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투자, 제작, 시청환경이라는 변화된 ‘운동장’이 도사린다. 확실한 캐릭터에 약간의 코믹 코드 그리고 1~2회 정도의 시나리오로 옴니버스로 구성할 수 있는 시즌제 작품이 큰 대세가 됐다는 말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당연히 ‘슈퍼 IP’로의 꿈을 꾸기 좋아진 환경이라 볼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새롭고 도전적인 시나리오와 연출, 배우들의 등장이 그만큼 쉽지 않아진다는 말도 된다. 하나의 캐릭터를 잘 구축해놓으면 그 캐릭터의 잔상으로 여러 시즌을 구상하는 모습이 대한민국에도 일상이 됐다는 의미다. 물론 그 IP 구축의 노력을 폄하하면 안 되겠지만, ‘시즌제 드라마 왕국’에는 이러한 현실적 이유도 조금은 섞여 있는 복잡미묘한 의미가 숨어있다.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