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가 잔뜩 담긴 통에 메기 한 마리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들의 활동성이 강해진다.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 움직이기 때문이다. 몇 마리 정도 잡아먹혀도 나머지를 더 건강한 미꾸라지로 키울 수 있다.
이에 빗댄 ‘메기남’, ‘메기녀’라는 표현이 있다. 주로 ‘솔로지옥’과 같은 연애 예능에 자주 등장한다. 매력적인 남녀를 중간에 투입시켜 기존 인물들의 관계에 균열을 내거나, 더 흥미진진한 서사를 만드는 식이다.
같은 맥락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디즈니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에 중간 투입된 배금지는 더할나위 없는 메기녀다. 배우 조여정이 빚어내는 캐릭터가 상당히 매력적이고 맛깔스럽기 때문이다.
배금지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들이 은밀하게 드나드는 고급 요정의 마담이다. 권력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기개가 남다르다. 외모는 발군이고, 수려한 언변으로 삽시간에 상대를 홀린다.
물론 배금지가 직접 권력을 쥐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권력자들 곁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인물이다. 중앙정보부 국장 황국평(박용우) 뿐만 아니라,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천석중(정성일)과도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배금지는 그 권력 관계를 적절히 이어붙일 줄 안다. 배금지를 통해 만남을 원하는 권력자에게 끈이 닿을 수 있다면 과연 누가 배금지가 내미는 손을 마다할 수 있을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그 시절 권력자들이 모이는 유흥가에서 흘러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모두 배금지에게 흘러 들어간다. ‘정보의 저수지’인 셈이다.
그런데 배금지의 이야기, 낯설지 않다. 실제 군부 시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인숙 피살사건이 겹치기 때문이다. 지난 1970년 3월, 서울의 고급 요정 종업원인 정인숙은 숨진 채 발견된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였다. 교통사고를 가장한 총격 암살 사건이었고, 정인숙의 차를 운전하던 오빠 정모 씨는 넓적다리를 관통상을 당했으나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어 생존했다. 이 사건은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 다뤄졌으며, 1970년대의 대표적 의문사로 손꼽힌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었을 때, 배금지는 정인숙을 모티브로 두고 만든 캐릭터라는 것이 중론이다.
조여정은 단단한 연기력으로 배금지의 당당한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그는 권력 앞에 조아리지 않는다. 무릎 꿇는 이들 앞에서 권력은 더욱 활개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당찬 카리스마가 권력자들을 더욱 안달나게 만든다.
조여정은 배금지로 재탄생하기 위해 외모를 다듬었다.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은 ‘올백’ 머리, 여기에 붉은색 원피스와 귀고리, 당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호피무늬 코트까지 걸쳤다. 조여정 특유의 도도한 표정과 앙다문 입술, 그리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언변은 화룡점정이다.
조여정은 짧은 출연 분량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힘을 가진 배우다. ‘기생충’ 속 연교가 정점이었다. 극 중 ‘심플하고 예쁜’ 엄마 역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이후 출연한 ‘히든페이스’에서는 밀실에 갇힌 채 남편의 외도를 목격해야 하는 아내 수연 역을 격정적으로 표현했다.
‘인간중독’의 숙진 역할도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진평의 아내 역이었다. 역시 출연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고위 장교 아내 특유의 도도하고 고고한 모습을 군더더기없이 빚어냈다. 임신을 원하는 그가 남편과 부부관계를 맺은 후 벽에 다리를 올린 후 남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백미다.
조여정이 등장하는 3회의 부제는 ‘금지의 시대’다. 군부가 독재하던 1970년대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았다. 알아도 모른 척하고, 모르면 쥐죽은 듯 있어야 하는 시대였다. 조금이라도 사회적 메시지가 엿보이는 노래는 곧바로 금지곡 딱지가 붙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 부제는 중의적으로 읽힌다. ‘(배)금지의 시대’라 해석할 수도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권력이 인권을 누리던 시대에 배금지가 가진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걸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드러내기 위해서는 조여정의 연기력이 필요했다.
앞서 조여정은 "대개 캐릭터가 ‘무섭다’고 느껴질 때는, 그만큼 매력이 커서 반드시 도전해야 한다는 압박과 어려움이 동시에 밀려올 때다. 그런 의미에서 ‘배금지’는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분명 조여정이 그린 배금지는 ‘메이드 인 코리아’ 속 적절한 한 조각이었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