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화제작들을 시청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자꾸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주연은 아니지만 시선을 붙들고, 캐릭터의 이름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 캐릭터의 존재감이 먼저 각인된다. 배우 이이담. 2026년 상반기, 그는 불과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전혀 다른 세 작품을 연달아 선보이며 시청자의 시선을 붙들었다. ‘넷플릭스 신입 공무원’이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가벼운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꽤 정확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플랫폼이 먼저 선택하고, 시청자가 뒤늦게 이름을 외우는 배우. 이이담의 지금이 꼭 그렇다.
고윤정과 김선호의 캐스팅만으로도 공개 전부터 글로벌 팬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이 사랑 통역되나요?’. 두 주연의 두근두근한 케미스트리가 중심에 놓인 이 작품에서 이이담은 데이트 예능 프로그램 ‘로민택 트립’의 PD 신지선으로 등장한다. 언뜻 조연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는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뒤흔들며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다. 주연의 로맨스가 자칫 단조로운 쌍방향 서사로 흘러갈 수 있는 지점에서 신지선은 균열을 만들고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이담은 이 작품에서 튀지 않는 선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각인시킨다. 많은 대사나 압도적인 장면 없이도 카메라 앞에서 장면의 밀도를 유지하는 능력은 연기 경력이 길지 않은 배우에게서 쉽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이 배우의 이름을 궁금해하게 만든 이유 역시 과장 없는 연기, 그 안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얼굴 덕분이었다.
‘이 사랑 통역되나요?’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이담은 또 다른 세계에서 전혀 다른 얼굴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에서 그는 미스터리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 김미정으로 등장한다. 극중 김미정은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서사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는 중요한 고리다.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기보다 표정과 리듬으로 암시하는 방식은 이이담이 이미 작품의 톤을 읽고 조율할 줄 아는 배우임을 보여준다. 그의 연기는 언제나 과잉을 경계하며 이야기의 균형을 우선한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에서도 이이담은 같은 태도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고아성 변요한 문상민이 이끄는 청춘 멜로 성장 서사 속에서 그는 백화점 직원 세라로 분한다. 극중 세라는 주연은 아니지만,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던 미정 요한 경록의 관계 변화를 촉발하는 유의미한 변수다. 서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은 오히려 더 까다롭다. 무게를 드러내지 않되, 극의 균형을 무너지지 않게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 작품들 역시 이 흐름 위에 놓인다. 이이담의 커리어에서 분기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JTBC 드라마 ‘공작도시’에서 그는 권력과 욕망, 정치적 계산이 교차하는 세계의 주변부에 선 인물로 등장했다. 그가 연기한 김이설이란 인물은 중심 인물들과의 정확한 거리, 감정의 온도를 유지하며 드라마를 이루는 커다란 사건의 밀도를 지켜냈다. 감정을 과잉 소비하지 않고 장면이 요구하는 만큼만 움직이는 태도. ‘공작도시’에서 이이담은 눈에 띄기보다 드라마의 서사를 이루는 하나의 축으로 각인됐다.
이후 넥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에서는 하드한 액션 장르의 일원으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는 섬세한 감정선을 이어가는 간호사로, tvN 드라마 ‘원경’에서는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인물로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액션과 휴머니즘, 사극과 멜로까지 넘나드는 이 이력은 단순한 다작이 아니라 작품마다 이전의 이미를 지워낸 자기 갱신의 결과다.
그에게 붙은 ‘넷플릭스 신입 공무원’이라는 별명은 그래서 가볍지 않다. 글로벌 플랫폼이 한 배우를 반복해 선택한다는 것은 신뢰와 전략이 동반된 판단이다. 이이담은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어떤 장르에서 어느 캐릭터를 연기해도 작품의 톤을 유지하는 배우라는 확신을 쌓아왔다. 그리고 그 신뢰는 2026년 상반기, 연속 공개된 화제작들로 이어졌다.
이제 스물아홉. 배우로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은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런 그를 플랫폼이 먼저 알아보고, 시청자가 뒤늦게 이름을 외우기 시작하는 이 순서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요란하지 않지만 자꾸 눈에 남는 얼굴. 이이담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분명한 속도로 자신의 페이지를 채워가고 있다. 다음 작품에서 그가 어떤 자리에 서게 될지, 그래서 또 어떤 얼굴로 당도할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조이음(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