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치료비를 보장하는 실손의료보험이 당분간 나오기 어려워졌다. 한방병원협회가 환자의 개인정보제공 동의를 받지 않고 진료비 정보 수백만건을 보험개발원에 제공했다가 논란이 일자 보험개발원이 전량 폐기해 상품 개발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한방병원협회는 제공한 정보가 비식별정보라 문제가 없다면서도 다른 방법을 통해 한방실손보험 개발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방병원협회는 지난 5월 말 경 생명·손해보험협회에 한방 치료비를 보장하는 실손보험 상품 개발 추진과 관련, 기존에 보험업계에 제공한 정보를 폐기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통해 상품개발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상품개발에 필수적인 정보가 폐기됨에 따라 한방 실손보험 출시가 당분간 어려워질 전망이다.
병·의원 치료비를 보장하는 실손보험의 표준약관에 한방 치료비는 보장 대상에서 빠져있다. 2009년 이전 판매한 실손보험은 한방병원 입원비를 보장하고 그 이후 출시된 상품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한방 급여의 본인 부담금에 한해 보장한다. 비급여 치료비는 보장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의업계는 수년 전부터 양방 병원 치료비와 마찬가지로 한방도 실손보험 보장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를 우려해 반대했다. 하지만 2015년 양 업계는 양해각서(MOU)를 맺어 2018년부터 한방 치료비가 보장되는 실손보험 상품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2015년 양해각서를 맺을 당시 한의업계는 진료비를 표준화하고, 보험요율 개발을 위해 믿을만한 통계를 보험개발원에 제공키로 했다.
이에 따라 한의업계가 보험개발원에 수백만건에 달하는 환자 진료비 정보를 넘겨줬으나 정작 환자의 개인정보 동의를 받지 않은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한방병원협회가 제공한 정보는 환자의 성별과 생년월일, 진료 항목 등으로 주민등록번호, 이름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정보와 결합할 경우 누구인지 ‘식별’이 가능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보험개발원은 해당 정보를 전량 폐기했다.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비식별 의료정보를 활용해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지기 위해 보험협회는 행정안전부에, 한방병원협회·한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에 각각 유권해석을 의뢰하기로 했으나 한의업계가 유권해석 없이 다른 방법으로 상품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터 추나요법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향후 첩약도 건보 적용이 가능한지 검토 중에 있는 만큼 한의업계가 실손보험 보장에 대한 의욕에 예전만은 못한 것 같다”며 “굳이 민감한 개인정보 문제를 건드리면서까지 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방병원협회 관계자는 "진료비 정보를 수집할 당시 수집대상의 항목은 한의업계, 보험업계, 보험개발원 등이 모두 협의해 작성한 뒤 수집한 것"이라며 "손보업계에서 뒤늦게 개인정보 이슈를 제기한 상황에서 굳이 더 갖고 있을 이유가 없어서 진료비 정보를 폐기한 것일뿐 개인정보보호법 상 문제가 확정되었기 때문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름, 주민번호 등의 개인식별정보를 삭제해 받았기 때문에 개인정보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정보"라며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일 뿐 상품개발을 잠정 중단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의업계가 실손보험의 한방 치료비 보장을 재추진하려면 5년여가 걸릴 것이라고 보험업계는 예상했다. 실손보험은 ‘신위험’을 보장하려면 과거 통계가 5년 이상 축적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방병원이 환자의 동의를 받아 진료비 정보를 축적하려면 최소 5년 소요되고 이에 따라 한방 실손보험 출시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한의업계는 이에 대해서 "보험요율 개발을 할 수 있는 근거자료는 다른 방법을 이용해 마련할 수 있다"며 "한의사협회와 한방병원협회는 금융감독원, 보험업계와 한방 실손상품 개발을 위해 협의 중"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