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글로벌 긴축기에 국내 시장을 외면하고 해외투자 비중을 늘렸다가 손실을 내고 있는 국민연금기금의 운용계획에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투자시장 글로벌화란 명분은 나쁘지 않지만 해외시장 환경도 암울한 시기라 이대로라면 초가삼간이 불타고 있는데 국민노후자금을 남의 나라에 퍼주는 꼴만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정부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당국은 최근 국민연금의 운용실적을 토대로 기금운용계획에 대한 새 의견을 제시하기로 했다. 기금운용 독립성은 존중하지만 국내 투자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이기로 한 현행 운용계획이 시의성이 적절한 지에 대해서는 또다른 고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누적 수익률은 ?4.74%(잠정치)로 지난해 10.77% 대비 15.51%p 하락 반전했다. 미국이 올 초부터 급격한 금리인상에 나서 글로벌 유동성이 줄어들자 사실상 비중이 높은 대부분의 투자섹터에서 손실이 나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같은 기간 국내주식(-14.76%)과 해외주식(-6.46%), 국내채권(-6.0%)에서 손실을 냈고, 해외채권(3.32%)과 대체투자(10.9%), 단기자금(1.99%) 부문에서 이익을 거뒀다. 올해 전체 손실액에 따라 지난해 948조원을 넘어섰던 국민연금은 8월 말 기준 약 31조원 줄어든 917조원으로 감소했다.
당국은 국민연금 수익률의 하락반전은 외생변수에 따른 문제나 운용 독립성을 고려하면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금운용본부가 제시한 것처럼 운용방향이 지속적으로 국내시장을 외면하는 식으로 이뤄진다면 최근과 같은 글로벌 긴축기에 국내시장의 금융불안이 지나치게 증폭될 수도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 9~10월 주식시장 폭락시기나 지난달 채권시장 위기 시에 국민연금은 전혀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 지난해 대비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26조원 감소한 139조원으로, 국내채권 비중은 31조원 줄어든 308조원에 머물렀다. 투자시장을 다변화한다는 명분으로 운용계획을 해외비중 확대에 고착한 나머지 국내시장의 폭락을 가중시킨 꼴이 됐다는 지적이다.
당국은 위험도가 높은 주식시장 비중감소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더라도 고정이윤이 보장된 국내채권 시장 비중을 국민연금이 지나치게 줄이는 것에 대해선 문제가 많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예컨대 지난달 레고랜드와 흥국생명보험 사태로 채권시장이 한동안 마비된 상태에서 드러난 국민연금의 실종은 국내 금융시장 자체의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11월에 발행된 한전채(2·3년물)는 9900억원 어치로 금리가 5.99%에 달했는데도 국민연금이 이를 흡수하지 못하는 구조였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국가가 보증해 망하지 않을 약 6% 짜리 국내채권을 외면하고 해외채권이나 대체투자를 늘려서 얻은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면 그런 기금운용계획은 수정돼야 한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이같은 고착화된 운용행태가 최근 CIO(기금운용본부장)의 공석 사태로 인한 것이라는 판단도 내리고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 개혁을 위해 김태현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지난 9월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했지만 기금운용에 대해서는 영역을 달리 한 자금시장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신임 국민연금 CIO 후보에는 서원주 전 공무원연금 CIO 등 2~3인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국민연금에 최근 급격히 변동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할 기금운용 전문가가 CIO로 필요하다"며 "그러나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는 무거운 책임에 비해 보수(1억원대)가 지나치게 낮고, 지방(전주)에서 3년을 근무한 이후에는 취업제한으로 인해 다시 3년간 민간이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한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