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대통령이 국장을 선포하자 여러 정부 기관들은 뭐라도 해보겠다고 대책을 내놓았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여러 시혜책이 제안됐는데 그 중 하나는 국세청의 세금납부 유예다.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 부상자 가족이 세금을 낼 경황이 없으니 그걸 면제해주기는 어렵고 일단 천천히 내라는 것이다. 과거 태풍 피해로 농민들이 신음하고 수재민의 경제생활이 곤궁할 때에 만들어진 대책인데, 위에서 다급히 재촉하니 이태원 참사 피해 가족에도 일단 내놓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은 생때같은 젊은이들이고 그들은 국가의 부재로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남은 유가족들의 범위가 모호할 뿐더러 젊은 아들과 딸을 잃은 부모들에게 세금 몇 푼을 천천히 내라고 하는 게 대체 얼마나 소구력이 있었는 지는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게 사실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처럼 보상을 운운하는 것은 단지 목숨값을 돈으로 따지는 의식의 흐름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참혹한 것은 이런 행태가 한 번도 아니고 다시 반복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달 중순 특별법을 제정해 피해자 가족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하겠다고 일부 언론을 통해 운을 띄웠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체행동 의지를 보이자 그 의사를 황급히 거뒀다. 유가족들의 아픔을 돈으로라도 달래보려한 것인데 반응이 영 아닌 듯 싶자 뒤늦게 없던 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론을 떠 보는 권력의 제스처는 피해자 가족들에겐 벗어나기 힘든 2차 가해를 야기한다. 피해자 부모들의 심정은 돈으로는 메울 수 없는 것인데 마치 저들이 돈을 원한 것과 같은 대중의 논란을 낳기 때문이다.
이후에 불거진 책동은 더 가관이다. 대통령의 엄중한 명을 받든 이태원 특별수사본부는 사고현장의 물리적 정체를 야기한 해밀턴호텔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바른 말로 치면 해밀턴호텔은 어제 오늘 그 자리에 있던 게 아니다. 행정규제를 어기고 불법건축 행위로 정체를 야기했다며 뒤지고 있지만 실제 잘못은 벌금을 내고 버틴 호텔이 아니라 제재행위로 그릇된 점을 수년간 해결치 못한 서울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좌우간 이제 돈으로 목숨값을 치르지 못하는 정부가 할 수 밖에 없는 행위는 속죄물을 찾는 전형적인 살풀이 뿐이다. 해밀턴호텔 업주와 관계자들이 작위적으로 참사를 야기한 것이 아닌데 그들에게는 원죄가 지워질 수밖에 없다. 그냥 그 자리에 있던 죄다. 해밀턴호텔 사람들도 국민인데 그들을 단지 분풀이 대상으로, 이른바 표적으로 삼는 행정 작용이다.
국가와 정부가 이렇게 이태원 정치에 몰두하는 사이 민생에서는 또 다른 사고 위험이 응축되어 간다. 187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폭발을 앞둔 임계점을 향하는데도 무정부적인 금리를 좌시하는 것이다. 폭증한 이자에 가처분 소득을 잠식당한 민생의 시름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워싱턴에서 날아온 한국은행 총재는 단지 국제정세만을 읊고 있다.
부동산 정치에 실패한 전 정부를 딛고 집권한 현 정부는 내 집 하나 마련해보겠다고 퇴직금을 깨고 대출을 끌어 집을 산 국민들은 어느 새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금리가 월급쟁이들의 급여를 담보잡고 그 위력에 압사당하는 그 때가 와야 정부는 다시 등장할 거 같다. 그 정부는 피폐한 국민에게 또 어떤 보상책을 내놓을 지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