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로 바꾸면 뭐가 좋아지나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이종(異種)산업끼리 왜 합치나요" (23일 삼성그룹 관계자들)
당사자는 줄기차게 부인해도 소문은 끊이지 않는다. 증권가에 지주사 전환 등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설이 퍼질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23일 주식시장에서 제일모직은 13% 가까이 급등했다. SK, 한진 등 이미 지주사 체제로 바꾼 그룹들이 합병으로 지배구조를 정비하자 덩달아 삼성에 관심이 쏠렸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이 합병이든 지주사 전환이든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하고 이 과정에서 지분가치가 뛰어오르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가 적지 않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투병에 들어간 지 1년이 다된 점도 투자자들의 심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15일에는 난데없이 '이건희 회장 건강이 더 악화됐다'는 설이 또 한 번 증권가를 휩쓸면서 제일모직 주가가 10%가량 치솟았다. 불과 일주일새 시가총액 20조원이 넘는 회사 주가가 실체 없는 바람에 휩쓸려 춤을 춘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시세조종 세력의 농간이나 거래량과 주가를 띄우려는 증권가의 '아니면 말고' 식의 영업행태를 의심한다. 물론 기업의 경영전략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삼성그룹 또한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꿔 지배구조의 변화를 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상태에서는 현행 지배구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삼성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지주사 전환은 자회사 지분매입에 필요한 수십조원으로 추산되는 비용문제와 금산법·공정거래법·금융지주회사법 규제 등 넘어야할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다. 그 모든 제약을 뚫고 설사 지주사를 만든다 하더라도 딱히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 세제혜택을 받지만 출자규제 등 지켜야할 룰도 잔뜩 생긴다.
무엇보다 현재 지배구조로도 대주주들이 그룹을 지배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삼성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이 우리한테 이익이 된다면 바꾸지 말라고 해도 바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설만 해도 오너의 지배력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제일모직 지분율은 23.23%, 이날 종가 기준으로 지분가치는 5조6135억원이다.
반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이 없다. 삼성물산의 이날 시가총액은 9조5918억원으로 제일모직과 시가총액 비율대로 합병한다고 가정하면, 합병법인의 시가총액은 33조7568억원,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16.63%로 낮아진다.
비록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를 얻어 합병법인의 그룹 지배력은 커지지만, 합병법인 자체에 대한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상당 부분 떨어지는 것이다. 만약 지주사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면 최대주주 지분율 하락은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주사는 최대주주가 확실한 우호지분을 갖고 있지 않으면 언제든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건설사업 부문이 서로 겹쳐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피상적이다. 먼저 건설업은 수주산업으로 굳이 계열사를 합쳐서 얻는 이익이 거의 없다. 대부분 그룹이 복수의 건설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각각 영위하고 있는 건설부문도 내용이 전혀 다르다. 제일모직은 매출액 1조3000억원 수준으로 조경공사나 소규모 빌딩 등 일반 건설공사 위주다. 삼성물산은 토목, 대형 플랜트사업과 해외 프로젝트 위주로 매출액이 15조원에 육박한다.
이로 볼 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설'로 이득을 얻는 쪽은 이재용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는 아닌 듯하다. 거래가 늘어날수록 이득을 보는 그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흘린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