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재계 단체장을 지낸 한 인사가 작고하자 장례식장은 정·재계 조문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 중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있었다. 수행원 없이 단출하게 현장을 찾은 김 전 회장 곁에 장례식장을 지키던 한 대기업 임원이 따라 붙었다. 대우그룹 출신인 이 임원은 가슴 속에 대우그룹의 '세계경영' 시절의 자부심이 여전히 꿈틀거린다고 했다. 그는 김 전 회장을 조우하자 감정이 북받쳤다고 했다.
최근대우인터내셔널과 모기업인 포스코가 얼굴을 붉히는 일이 벌어졌다.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의 미얀마 가스전 매각을 검토하자 대우인터내셔널이 강도 높게 반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룹'에서 하는 일에 자회사 대표가 대놓고 모기업을 비판하는 건 전례가 드문 케이스다. 자회사는 거리낌이 없었고 포스코는 침묵했다. 한 포스코 임원은 "당황스럽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대우그룹 출신의 한 재계 인사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1등 DNA'를 갖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룹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해당 그룹은 오너십이 강한 곳이다.
행간의 의미를 보면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의 자존심을 세게 건드렸다 △자회사가 반발할 수 있었던 건 포스코가 오너 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등으로 요약된다.
대우인터내셔널은 국내 종합상사 중에서도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대우그룹 시절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너도나도 가겠다고 하던 곳이 바로 (주)대우(현 대우인터내셔널)였다.
"미얀마 가스전은 곧 대우인터내셔널이다. 국내 자원개발 역사상 이 정도로 성공한 곳이 없었다. 대우맨 특유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정체다. 그런 미얀마 가스전을 팔겠다고 하는 건 자원개발을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의 한 직원의 말이다.
반면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일을 "대우인터내셔널의 오버"라고 일축했다. 그는 "성공한 구조조정이란 망가진 사업을 헐값에 파는 게 아닌, 잘 나가는 사업을 프리미엄 받고 파는 것"이라며 "미얀마 가스전 매각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국제회계기준(K-IFRS)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일리가 있다. 포스코는 연결재무제표상 자회사들의 실적이 그대로 반영된다. 포스코 입장에서는 포스코플랜텍 같은 곳에 대해 구조조정을 잘하는 것보다 미얀마 가스전처럼 돈 되는 곳을 비싸게 파는 게 남는 장사다.
권오준 회장이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조직하면서 5개 분과위원장에 계열사 CEO를 한 명도 넣지 않은 것도 계열사 사정보다는 그룹 차원의 큰 결정을 내리기 위한 포석이다.
오너십 없는 포스코 지배구조에서 이번 일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포스코 주도의 구조조정이 빠르고, 힘 있게 진행될 수 있겠느냐'다.
그런 점에서 권오준 회장의 일거리는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자회사들과 충분한 협의가 전제되지 않은 구조조정은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번 일을 '약'으로 받아들이는 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