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뚜껑으로 창업, 버린 옷은 작품…폐자원의 변신[넷제로케이스스터디]

병뚜껑으로 창업, 버린 옷은 작품…폐자원의 변신[넷제로케이스스터디]

전주(전북)=권다희 기자
2026.08.0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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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전주시 새활용센터 다시봄
전주 새활용센터 '다시봄',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
아이디어 단계 입주자, 기업으로 성장해 첫 '졸업'
입주기업이 시민교육 강사로…자원순환 문화 확산
폐자원 수거·의류 교환까지…지역 순환망 구축

[편집자주]  녹색전환·탄소배출 저감은 거대한 과제이지만 동시에 할 수 있는 데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머니투데이가 탄소배출 저감과 에너지전환을 향해 가는 '현재 진행형' 사례들을 매주 소개합니다.
 주식회사 잇잇이 폐플라스틱을 새활용해 제작한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굿즈 NFC 키링. /사진출처=잇잇 인스타그램
주식회사 잇잇이 폐플라스틱을 새활용해 제작한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굿즈 NFC 키링. /사진출처=잇잇 인스타그램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키링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주식회사 잇잇. 4년 전 '병뚜껑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이하 다시봄)'에 입주했다.

이후 잇잇은 다시봄에서 브랜드를 만들고 제품과 교육·전시 콘텐츠를 개발했다. 외부 생산업체와 협업해 제품을 양산하는 경험도 쌓았다. 지난해에는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굿즈를 선보였다. 올해 4년간의 입주 기간을 마친 잇잇은 전북 지역의 다른 창업 보육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디어 단계의 예비 창업자가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해 이곳을 '졸업'한 첫 사례다.

이은주 다시봄 센터장은 지난 3일 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전주처럼 새활용 산업 기반이 크지 않은 지역에서도 아이디어를 가진 시민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전주시 완산구 소재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 전경. 5층 건물에 입주기업 공간을 비롯해 전시장과 교육·모임 공간, 소재 창고, 공유주방 등이 마련돼 있다./사진=권다희 기자
전주시 완산구 소재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 전경. 5층 건물에 입주기업 공간을 비롯해 전시장과 교육·모임 공간, 소재 창고, 공유주방 등이 마련돼 있다./사진=권다희 기자

업사이클링 기업 키우는 '인큐베이터'

다시봄은 업사이클링의 우리말인 '새활용'을 이름에 달고 2021년 6월 문을 열었다. 전주시 예산으로 민간법인이 위탁운영한다. 버려진 물건에 디자인과 새로운 쓰임을 더해 이전보다 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되살리는 활동의 지역 거점이다. 시민에게 이 같은 문화를 알리는 일과 이를 산업으로 연결하는 일을 양대 축으로 삼고 있다.

다시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입주기업을 키우는 '인큐베이터' 기능이다. 버려지는 자원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으려는 개인과 예비 창업자에게 사무실과 공동 작업실, 촬영 공간 등을 제공한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입주자는 2년간 머물 수 있고 평가를 거쳐 2년을 연장할 수 있다.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개인도 아이디어가 있으면 지원할 수 있다.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일반 재활용 산업과 달리 새활용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바탕으로 1인 기업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다시봄 건물 2층에 입주한 기업들 중 한 곳인 연필특공대/사진=권다희 기자
다시봄 건물 2층에 입주한 기업들 중 한 곳인 연필특공대/사진=권다희 기자

폐스크린부터 몽당연필까지…입주팀이 만드는 '새 쓰임'

현재 센터 홈페이지에 등록된 입주기업과 단체는 5곳이다. 이 가운데 욱샘작업실은 버려진 비닐을 겹쳐 새로운 원단으로 만드는 '비닐클링' 제품과 폐우산·영화관 폐스크린을 활용한 소품을 개발한다. CGV 전주효자점에서 기부받은 폐스크린으로 만든 파우치는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굿즈로도 선정됐다.

영화관 폐스크린을 수납걸이와 안경집 등으로 바꾸는 늘솜공방, 폐우산과 플라스틱 병뚜껑, 폐비닐 등을 활용한 환경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자주적관심, 짧아져 버려지는 몽당연필을 모아 예술작품으로 되살리는 시민행동21 연필특공대, 버려진 폐섬유를 작품으로 만드는 얀스무크 등이 현재 입주해 있다. 기업뿐 아니라 환경교육가, 시민단체, 공예가가 같은 공간에서 소재와 아이디어를 나누는 구조다.

센터 건물 2층 입주 기업들의 공간. 버려진 자개장 등을 활용한 테이블 등 가구, 소품들도 대부분 폐자원을 활용했다/사진=권다희 기자
센터 건물 2층 입주 기업들의 공간. 버려진 자개장 등을 활용한 테이블 등 가구, 소품들도 대부분 폐자원을 활용했다/사진=권다희 기자
버려진 우산·스크린이 소재로…지역이 만든 자원순환망

지역에서 나온 폐기물이 입주기업의 소재가 되는 연결망도 만들어졌다. CGV는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영화관 스크린과 좌석 원단을 제공했다. 아름다운가게는 기부받은 옷 가운데 매장에서 판매하기 어려운 의류를 센터에 넘긴다. 학교와 공공기관은 고장 난 우산과 소형 가전을 모아 보내고, LX한국국토정보공사와는 사용이 끝난 직원 근무복을 새활용 제품으로 바꾸는 공모전을 열었다.

센터가 소재를 기부받는 과정에는 시민과 지역 기관이 자연스럽게 참여한다.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센터의 폐우산 수거 활동을 접한 뒤 학생들에게 집이나 학교에 방치된 우산을 모아 오도록 요청해 다시봄에 제공했다. 기관에는 수거함과 안내 배너를 설치하고 일정 기간 폐자원을 모으는 '기부 챌린지'도 진행한다. 모인 폐자원은 입주기업의 제품과 교육 재료로 다시 쓰인다.

센터 건물 3층의 전시 공간. 현재 버려진 옷감으로 인형을 만든 '기억의 매듭: 순환하는 바느질' 전시가 진행 중이다. 매해 5~6개의 전시가 이뤄진다/사진=권다희 기자
센터 건물 3층의 전시 공간. 현재 버려진 옷감으로 인형을 만든 '기억의 매듭: 순환하는 바느질' 전시가 진행 중이다. 매해 5~6개의 전시가 이뤄진다/사진=권다희 기자

교육 프로그램은 폐자원이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방점을 둔다. 청바지를 해체하고 쓸 수 있는 부분을 골라 재단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새활용 제품이 일반 제품보다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폐기물을 모으고 세척한 뒤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을 일일이 골라내야 해 대량 생산 제품보다 사람의 손이 훨씬 많이 가기 때문이다.

입주기업 대표들도 강사로 참여한다. 어떤 폐기물에 주목했고, 이를 분해하고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자신의 경험을 시민에게 들려준다. 별도의 강사단은 만들기 체험 없이도 교구를 활용해 자원순환의 원리를 가르친다. 학교와 기관의 신청이 몰리면서 센터가 지원하는 상반기 교육은 통상 6월이면 예산이 소진될 정도다.

건물 1층의 의류 교환 공간 '21%랩'/사진=권다희 기자
건물 1층의 의류 교환 공간 '21%랩'/사진=권다희 기자

새로 만들기 넘어 오래 쓰기…'전주기 자원순환'으로

올해부터는 제품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이미 있는 물건을 오래 쓰는 활동도 강화했다. 지난 2월 시작한 의류 교환 공간 '21%랩'이 대표적이다. 시민이 오염되지 않고 계절에 맞는 옷을 한 번에 최대 3벌 가져오면 검수를 거쳐 교환권을 받고, 다른 시민이 내놓은 옷으로 바꿔 갈 수 있다.

21%랩은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다시봄은 주차장이 없고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인데도 옷을 들고 찾아오는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 6월 전주 남부시장에서 이틀간 열린 의류 교환 행사에서는 옷 309벌이 새 주인을 찾았다. 버리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눠 입고 싶어 하는 수요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다시봄이 이를 연결할 공간과 통로를 제공한 셈이다.

내부 폐자원 수거함 모습/사진=권다희 기자
내부 폐자원 수거함 모습/사진=권다희 기자

과제도 있다. 입주기업이 성장해도 새활용 제품을 안정적으로 판매할 시장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은주 센터장은 새활용 제품이 친환경 제품으로 보다 쉽게 인증받고 공공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폐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체계 구축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이은주 센터장은 "새활용이 버려진 물건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서 더 나아가 소재 수거부터 생산, 소비, 재사용까지 이어지는 전주기적인 자원순환을 고민해야 한다"며 "시민이 내놓은 폐자원을 지역 기업이 제품으로 만들고, 시민이 다시 소비하는 선순환이 자리 잡도록 다시봄이 지역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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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다희 기자

머니투데이 산업1부 권다희입니다. 산업과 지역의 녹색전환, 재생에너지 분야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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