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유체이탈 화법'의 핵심은 '책임 회피'다. 주체를 불명확하게 만들어 문제의 원인이 자신과 동떨어져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요지다.
최근 대규모 적자설이 불거지는대우조선해양을 두고 산업은행의 유체이탈 화법이 눈길을 끈다. 이달 중순부터 언론을 통해 소문이 시작된 대우조선해양 적자 추정액은 날마다 1조원씩 불어났다. 정부당국과 산업은행을 출처로 작성된 보도들은 이구동성으로 '대우조선해양의 손실 은폐' '채권단 실사 및 구조조정 방침'을 전했다.
산업은행의 적자설 흘리기 및 '고강도 감리' 시사는 대우조선해양 경영 실패 원인을 자신들과 분리해보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산업은행 몰래 대우조선해양이 손실을 은폐하기란 불가능하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31.5%(6021만7183주)를 지닌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이다.
산업은행은 여러 면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전권을 좌지우지한다. 올해 초 지지부진하게 미뤄졌던 고재호 전 대표이사의 후임자 선정도 산업은행의 입김이 작용한 끝에 산업은행의 또 다른 자회사인 STX조선해양 CEO로 돌려막기하며 결론이 났다.
전임 김유훈, 김갑중 CFO에 이어 현 CFO인 김열중 부사장도 모두 산업은행에서 내려 보냈다. 기타비상무이사는 이영제 산업은행 기업금융4실장이 맡고 있다.
고재호 전 사장은 자신의 연임 이슈 때문에 손실을 은폐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참담한 심경을 주변인들에게 전한다.
그는 "산은 출신 CFO가 곳간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상황에서 회계 누락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남상태 전 사장 역시 비슷한 심경일 것이다. 산업은행이 고재호·남상태 전 사장에 대한 민·형사상 고소를 검토한다니, 만약 법정에서 맞붙게 된다면 두 전임 CEO가 그간 산업은행의 관리감독 현실에 대해 증언할 듯하다.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7일부터 별도의 경영관리팀을 대우조선해양에 보내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홍 회장이 경영실사 이전에 해결해야할 일이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기존 발생 적자가 자신에게까지 보고되지 않았던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 그동안 관리감독을 맡았던 인사들과, 그 책임을 회피하려 대규모 적자설을 흘린 이들에게 대우조선해양 시가총액 1조원 증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