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만에 3억 아꼈다"...강남 빌딩 지하에 흐르는 '한강물' 비밀[넷제로케이스스터디]

"석달만에 3억 아꼈다"...강남 빌딩 지하에 흐르는 '한강물' 비밀[넷제로케이스스터디]

권다희 기자
2026.08.0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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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수열에너지
무역센터, '에어컨 7000대 규모' 수열 냉난방 시스템 올해 가동
기존 냉난방설비 대비 에너지 사용량·탄소배출 절감
2019년 하천수 '재생에너지 수열'로 인정되며 사업 확대
데이터센터·아파트 등으로 적용 확대 추진

[편집자주]  녹색전환·탄소배출 저감은 거대한 과제이지만 동시에 할 수 있는 데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머니투데이가 탄소배출 저감과 에너지전환을 향해 가는 '현재 진행형' 사례들을 매주 소개합니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전경/사진출처=국내 최대 규모 도심형 친황경 수열에너지 한국 무역센터 적용사례, WTC 서울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전경/사진출처=국내 최대 규모 도심형 친황경 수열에너지 한국 무역센터 적용사례, WTC 서울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대지 경계에서 불과 15m 떨어진 봉은사역 일대 지하에는 지름 2.2m짜리 광역원수관 두 줄이 지나간다. 아직 정수 처리를 거치지 않은 한강 물의 통로다. 무역센터는 이 관로를 흐르는 물을 이용해 건물을 식히고 온수를 만든다.

무역센터로 들어온 한강 원수가 사무실 배관을 직접 도는 것은 아니다. 먼저 자동 거름장치인 '오토스트레이너'가 원수 속 모래와 이물질을 걸러낸다. 이후 원수는 얇은 금속판을 여러 장 겹쳐 만든 판형 열교환기를 지난다. 금속판을 사이에 두고 한강 원수와 건물 내부 순환수가 섞이지 않은 채 열만 주고받는다.

열교환을 마친 원수는 환수관을 통해 다시 광역원수관으로 돌아간다. 무역센터가 구축한 이 시스템은 국내 도심 대형 건축물의 대표적인 수열에너지 활용 사례다.

무역센터 내부 수열 시스템/사진출처=국내 최대 규모 도심형 친황경 수열에너지 한국 무역센터 적용사례, WTC 서울
무역센터 내부 수열 시스템/사진출처=국내 최대 규모 도심형 친황경 수열에너지 한국 무역센터 적용사례, WTC 서울
에어컨 7000대 맞먹는 '한강 물 냉방'

수열에너지는 물이 여름에는 바깥 공기보다 차갑고 겨울에는 따뜻한 특성을 히트펌프를 활용, 냉난방에 이용하는 기술이다. 히트펌프 안의 냉매가 기체와 액체로 상태를 바꾸며 열을 흡수·방출해 물의 열을 필요한 곳으로 옮긴다.

실제 여름철 무역센터에 공급되는 광역원수(정수 처리 전의 한강 물)의 온도는 약 24℃로 바깥 공기보다 10℃가량 낮다. 건물에서 빼낸 열을 뜨거운 공기 대신 상대적으로 차가운 물로 내보내면 냉동기 압축기의 부담과 전력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같은 무게를 기준으로 물이 저장할 수 있는 열은 공기의 약 4배에 달해 많은 양의 열을 효율적으로 운반할 수 있다.

무역센터의 수열시스템은 7000RT(냉동톤), 약 24.5메가와트(MW)의 냉방 능력을 갖췄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를 8평 규모 공간을 24시간 냉방하는 에어컨 약 7000대와 맞먹는 수준으로 설명한다. 하루 최대 원수 이용량은 12만5000㎥로, 올림픽 규격 수영장 약 50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이 물은 냉방 과정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열교환을 거쳐 다시 광역원수관으로 돌아간다.

수열에너지 도입에 따른 무역센터 에너지 절감량 및 비용/그래픽=김지영
수열에너지 도입에 따른 무역센터 에너지 절감량 및 비용/그래픽=김지영

수열시스템 가동 석 달, 2억9000만원 절감

무역센터에는 60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고 연간 방문객은 약 5000만명에 달한다. 연간 전력 사용량은 1억400만킬로와트시(kWh), 전기요금은 약 178억원에 이른다. 에너지 소비가 큰 만큼 수열 도입에 따른 절감 효과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수열시스템을 본격 가동한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전기·가스·수도 사용 감소에 따른 절감액은 총 2억8767만원으로 집계됐다. 전기 사용량은 전년 동기보다 125만5831kWh(32%) 줄어 1억6279만원을 줄였다. 가스와 수도 사용 감소에 따른 절감액은 각각 5229만원, 7258만원이었다.

수열 히트펌프와 신규 열원설비를 도입하면서 폭염 등 냉방 수요가 급증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예비용량도 기존보다 78% 늘었다. 전력을 덜 쓰니 탄소배출량도 줄어든다. 수열시스템 도입으로 예상되는 연간 온실가스 감축 예상량은 약 2400톤이다.

노후 설비 교체와 탄소 감축, '수열'에서 답

무역센터가 수열을 선택한 배경에는 기존 냉동기 등 열원설비의 노후화와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마침 2019년 10월 신재생에너지법 시행령 개정으로 수열에너지 인정 범위가 해수의 표층에서 하천수까지 확대됐다. 이후 무역센터가 2022년 정부의 수열에너지 보급·지원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사업이 본격화됐다.

무역센터 인근 환경의 물리적 특성상 다른 재생에너지는 대안이 되기 어려웠다. 태양광은 옥상에서 확보할 수 있는 면적이 제한적인 데다 주변 고층 건물의 그림자와 기존 설비의 영향을 받았다. 지열은 건물이 밀집해 추가로 땅을 뚫을 공간이 부족했고, 소형 풍력은 고층 건물 사이에서 풍향과 풍속이 불규칙해 안정적인 발전량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반면 대지 경계 바로 옆 원수관은 연중 풍부한 물이 흐르는 데다 별도의 장거리 관로를 놓을 필요가 없어 수열을 활용하기에 유리했다. 무역센터는 광역원수를 기존 냉동기의 냉각수 열원으로만 활용하는 방안과 수열 히트펌프 열원 및 냉각수 열원으로 병행하는 방안을 비교했다. 이 가운데 에너지 효율과 운전비 절감 효과가 더 큰 병행 방식을 선택했다.

공사는 건물이 정상 운영되는 상태에서 야간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봉은사로를 굴착해 기존 광역원수관에서 무역센터로 이어지는 새 배관을 연결하고, 지하주차장의 좁은 통로와 기존 구조물을 피해 내부 관로를 구축했다. 무게가 대당 20톤을 넘는 대형 히트펌프 4대는 심야 시간대 특수 크레인과 이송 장비를 이용해 지하 4층 기계실로 옮겼다.

기존 터보냉동기 3대와 빙축열조 11기, 부속설비를 철거하고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배관과 전력설비도 교체했다. 공사비의 약 50%를 국비로 지원받았으며, 이를 반영한 사업 타당성 분석에서는 투자비 회수 기간이 약 5.5년으로 추산됐다.

루브르박물관 냉방 공급하는 센강

해외에서는 수열을 활용한 도시 냉방망이 이미 대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1991년부터 도시 냉방망을 운영해 왔으며, 일부 생산시설은 센강의 냉열을 활용한다.

파리시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냉방망 길이는 89km, 고객은 700곳 이상이다. 루브르박물관과 주요 백화점 등에도 냉방을 공급한다. 파리시는 2030년까지 냉방망을 116km로 늘리고 고객을 1055곳까지 확대한 뒤 2042년까지는 냉방망 길이를 기존의 3배로 확충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국내에서도 무역센터에 이어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와 현대차 글로벌 비즈니스 콤플렉스(GBC) 등 강남권 주요 시설에 수열에너지를 공급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데이터센터 식히고 아파트 냉난방…넓어지는 수열

이 외에도 공공·산업시설 중심으로 사업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롯데월드타워 등 전국 45곳에서 총 50.5MW 규모의 수열에너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력해 2030년까지 보급 규모를 1기가와트(GW)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대표적인 사업이 강원 수열에너지 융복합클러스터다. 소양강댐의 심층 저온수를 활용해 데이터센터 7곳과 스마트팜 1곳에 총 58MW 규모의 수열에너지를 공급하는 사업이다. 수자원공사는 기존 전기식 냉방시스템 대비 냉방에 쓰이는 에너지를 64%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경기 하남 교산신도시에서는 공동주택 763가구에 1000RT, 약 3.5MW 규모의 수열 냉난방을 공급하는 시범사업이 추진된다. 공동주택 각 가구에 수열에너지를 직접 공급하는 국내 첫 사례로, 2028년 관로 공사를 시작해 2032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다만 수열 사업이 어디서나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취수원이나 기존 관로에서 건물까지의 거리가 멀면 배관 공사비와 물을 옮기는 펌프의 전력 사용량이 늘어난다. 안정적인 수량과 수온을 확보할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하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검토해야 한다.

수열에너지 확산을 위해 활용 가능한 수원의 범위를 확대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지열·수열에너지학회 부회장인 최종민 국립한밭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수열은 광역원수관이나 대형 하천처럼 많은 양의 수원을 활용할 수 있어 도심 내 대용량 냉난방 수요나 지역난방과 연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재생 열에너지"라며 "수열에너지가 지역적 제한을 넘어 확산하려면 신재생에너지법상 인정되는 수원의 범위를 하수처리수와 유출지하수 등으로 확대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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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다희 기자

머니투데이 산업1부 권다희입니다. 산업과 지역의 녹색전환, 재생에너지 분야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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