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를 위기로 몰고 간 '갤럭시노트7'는 올 연말까지 제품 회수 후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출시 후 50여일 만에 '단종' 결정으로 제품으로서의 수명을 다한 이 제품의 '사후처리'를 놓고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삼성 내부에서는 이같은 이슈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번 갤럭시노트 7 단종 사태로 삼성전자가 감당해야 할 손실 규모가 내년 1분기까지 총 7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는 비상 상황에서, 수거 제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
삼성 사정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로 중대한 사건의 후속조치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과 최고위급 경영자인 최지성 부회장(미래전략실장), 권오현 부회장(삼성전자 대표이사) 정도일 것"이라며 "결국 최종 결정은 이 부회장의 손에 달렸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참담함'의 대상인 갤럭시노트7을 임직원들 앞에서 불태우는 '제2의 화형식' 같은 충격 요법을 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 '품질경영'의 시작이 20여년 전 '전화기 화형식'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다.
그러나 삼성과 이 부회장을 잘 아는 이들은 "노트7 화형식은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실리를 중시하는 이 부회장이 단순히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위해 '감정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과거 이같은 '충격요법'이 통했던 시절과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 변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이번 교환·환불대상 물량 180만대를 모두 폐기처분하는 것은 비용 뿐 아니라 환경 오염 가능성도 있어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제품을 불태운 적이 없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품질경영'을 언급하며 거론한 '애니콜 화형식'도 사실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불태운 것은 애니콜이 아닌 900Mhz(메가헤르쯔) 가정용 무선전화기 불량 제품이었다. 1994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무선전화기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무리하게 제품 출시를 서둘렀고, 이 결과 제품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았다.
때마침 회사에서 추석 선물로 임직원들에게 제공한 무선전화기에서 불량이 발견되면서 삼성전자 내부에서조차 불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격노한 이건희 회장은 이를 심하게 질타하고 회수한 15만대의 무선전화기를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쌓아놓게 했다. 1995년 3월9일 2000여명의 임직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해머를 든 여남은 명의 직원들이 전화기 더미를 내리쳤다. 산산조각 난 전화기들은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이 회장은 저서에 "이로 인해 발생한 손실이 무려 150억원에 달했다"고 기록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무선전화기 사업을 키운 삼성전자는 본격적인 휴대전화 시대를 맞아 꽃을 피웠다. 1994년 10월 처음 등장해 2011년 2월 '삼성 갤럭시'에 자리를 내 줄 때까지 '애니콜'은 삼성전자의 '품질 혁신' 그 자체였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과거 애니콜을 만들던 무선사업부에서 품질이란 자존심과 같았다"며 "생산라인 직원들도 자신이 만든 제품이 출고 전 검사에서 불량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품질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로 관련된 임직원들의 마음 속은 해머로 맞은 것처럼 쓰리고 아플 것"이라며 "이번 아픔이 훗날 더 큰 혁신을 위한 기반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4일 삼성전자는 제품 안전성 강화를 위해 '내부 품질 점검 프로세스'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내부 직원들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보여주기'식의 대응은 자제하고, 내부의 시스템적 문제점을 원점에서부터 차근차근 풀어가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