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뒤 '친기업'

심재현 기자
2022.02.08 03:08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이달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후보 토론에서 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국회사진취재단=뉴스1

얼마 전 만난 4대 그룹 대관 담당 인사가 불쑥 이런 얘기를 꺼냈다. "설 연휴 지나고 기업마다 대선 전망을 보고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소식이었다. 인맥과 정보망을 총동원해 어느 당의 누가 새로운 5년 대한민국호(號)를 이끌지 가늠했다고 한다.

한달 남짓 남은 대선을 두고 차례상 민심에 촉각을 기울인 곳이 정치권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다른 기업 대관 담당자는 유독 엎치락뒤치락하는 올해 대선 판세 때문에 연휴가 연휴 같지 않았다고도 했다.

기업들이 대선 때마다 정치권 못지않게 결과 예측에 목을 매는 이유는 정치의 영향력 때문이다. 정경유착이니 특혜니 하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정부의 기업관(觀)이다. 법과 정책을 움켜쥔 정치 권력이 기업을 대하는 방식은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

대선을 20번째 맞으니 기업들도 안다. 후보마다 '친기업'을 부르짖지만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는 다르다는 걸. 정치가 말하는 규제 개혁과 기업이 추구하는 규제 혁신의 출입문이 다르다는 걸.

애초에 우리 정치에서는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정치가 경제에 우선하고 기업은 정치가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묘한 연대감이 끈끈하다. 기업 때리기가 선(善)으로 포장되는 경우도 흔하다. 기업의 방종을 차단하기 위해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정치권에서 기업인 출신이 손에 꼽히는 까닭이다.

삼성, 현대차, SK, LG. 콕 찍지 않더라도 우리 기업들은 개발독재 시대 정치 권력과의 끈끈한 유대로 성장한 행운아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전 세계 브랜드와 견주는 기업들이 정권에 잘 보여 길러졌을 리 없다. 기술 없는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 리 없다. 온실 속의 화초는 웃자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한해 벌어들이는 이익의 대부분을 다시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쏟아붓는 이유가 여기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생전 "정권의 눈에 들어 계약을 따냈다는 얘기를 듣기 싫어 악착같이 중동시장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반세기 전 격변의 세계 질서가 그랬듯 최근의 국제시장 재편은 우리 기업에 또 한 번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어느 기업, 어느 산업이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는 변화와 투자, 혁신이 맞물리는 때다. 테슬라, 애플, 구글, 텐센트, 알리바바. 모두 그런 시절을 정치의 뒷받침 속에 살아온 기업이다. 지금의 변화를 놓치면 우리 기업은 다시 세계 시장의 변두리를 뱅뱅 돌게 될지 모른다.

한 달 뒤 대한민국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정치가 경제 위에 군림하려는 순간 성장의 한계는 명확해진다는 점이다. 우리가 갈지자(之) 걸음을 걷는다고 해서 남들도 손가락만 빨진 않는다. 세계사에서 경제를 놓친 왕조나 정부가 승승장구한 사례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스리고 막아서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 우선주의, 규제 만능주의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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