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EV9이 출시되기 이전 지금까지 이런 차는 없었다. 대형 전기 SUV(다목적스포츠차량)에 준하는 차량은 BMW iX나 테슬라 모델X 정도가 있겠지만 지나치게 비싸거나 내부 공간이 넓지 않았다.
기아 EV9은 풀옵션이 1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대중들한테 각인이 됐으나, 정말 필요한 옵션만 넣었을 경우 8000만원대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정도도 비싼 가격이라고 할 수 있으나 완충시 최대 주행가능 거리가 500㎞가 넘고, iX, 모델X 등이 1억원을 가볍게 넘기는 걸 고려해보면 그리 고가도 아니다.
13일 경기도 하남시에서부터 충청남도 부여군까지 EV9 어스 4WD 풀옵션 차량을 시승해봤다. 있으면 좋은 편의사양들이 많았으나, 이런 옵션을 제외하고 구매한다면 상품성이 매우 좋았다.
EV9의 외관은 남녀노소 누구나 눈길을 줄만하다. EV9을 빠르게 사전계약해 차량을 인도받게 돼 거리로 나간다면, 다른 사람들의 은근한 관심과 시선을 감당할 결심을 하고 나서야할 정도다.
국산, 수입차를 아울러 내연기관차에서는 보기 힘든 각진 디자인과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담겼다. EV9 관련 기사와 영상을 꾸준히 봤던 사람이라면 그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막상 공도에서보면 마치 현대차가 처음 아이오닉5를 세상에 내놨을때의 강렬함과 비슷하다.
내부 디자인도 기존 기아에서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다. 기아 전기차에선 처음으로 컬럼식 변속 레버를 적용해 핸들 하단에 배치했다. 덕분에 가운데 콘솔 박스의 적재 공간이 넓어졌다. 센터 디스플레이 하단엔 히든 타입 터치 버튼이 들어가 버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눌러보면 버튼의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됐다.
공조 장치는 웬만해선 디스플레이로 통합하는 요즘 트렌드와 달리, 기아는 온도·풍량을 조절하는 핵심 장치는 버튼으로 남겨뒀다. 덕분에 운전하면서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용이했다. 그 외 가끔 누르는 공기순환 기능 등은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 사이에 배치했다.
대형 전기 SUV인만큼 키 187㎝인 기자가 1·2열 어딜 앉아도 머리 공간, 다리 공간이 여유로웠다. 다만 3열은 아직까지는 성인이 타기에 적합하진 않았다.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태우는 패밀리카로 나온 EV9인만큼 적재공간에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보였다. 가운데에 위치한 버튼 최대한 문쪽으로 옮겼는데, 핸들 열선·열선시트·통풍시트 버튼은 가운데에서 문으로 위치가 변경됐다. 2열에선 콘솔박스 부분을 평소엔 닫아놨다가 필요할 경우엔 열어서 적재공간·테이블로 활용할 수 있다.
승차감·정숙성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로고를 기아에서 제네시스로 바꿔도 사람들이 모를 정도다. 다만 각진 형태의 SUV다보니 시속 120㎞ 이상 고속 구간에선 풍절음이 다소 들리긴 했다.
EV9엔 처음으로 정전식 핸들이 적용됐다. 예전 현대차·기아·제네시스 차량과 달리 손가락만 핸들위에 얹어놔도 차량이 '핸들을 잡고 있다'고 인식한다. 기존 현대차그룹 차량들은 크루즈 컨트롤을 켰을때 핸들을 조금씩 흔들어줘야 차량이 운전자가 핸들을 잡고 있다고 판단해 장거리 운전시 불편함이 많았다.
EV9의 상품성은 그 누가와도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 유럽에서 인정받은 아이오닉5·EV6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다만 가격대가 비싸기 때문에 있으면 좋지만 반드시 필요한 옵션은 제외하고 구매하는 게 합리적이다.
대표적인 옵션이 2열이 회전하는 스위블 시트, 마사지 기능이 추가되는 릴렉션 시트다. 옵션값이 각각 100만원, 200만원이다. 스위블 시트는 운전석·조수석을 최대한 앞으로 당겨야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 등받이 각도를 세우지 않으면 시트를 돌리다가 문에 걸려 힘이 두배로 든다. 기자는 이 기능을 시연해보다 등에 땀이 흠뻑 젖었다. 릴렉션 시트는 법인용 차량이 아니면 추천하지 않는다.
최고급 트림인 GT라인에만 넣을 수 있는 레벨3 자율주행 옵션 HDP도 마찬가지다. 시연할 수 있는 도로가 상당히 제한적이고, 선글라스를 쓰면 작동이 안될 가능성도 있어 사용성이 750만원이라는 옵션가에 비해 좋지 않다. 월 7700원을 내야하는 OTT 스트리밍 서비스도 추천하지 않는다. 7700원에 웨이브·왓챠 구독료는 또 별도로 들어가 가성비가 나쁘다. V2L 기능을 활용해 노트북이나 빔프로젝터로 보는 게 낫다.
EV9은 깡통으로 사도 사실 무방하다. 1열 통풍시트, 2열 열선시트, 크루즈 컨트롤 등 국내 소비자가 필수로 여기는 편의사양은 가장 저렴한 트림인 에어 2WD에도 들어간다. 이 트림의 가격은 친환경차 세제 혜택을 받으면 7385만원에 구입할 수 있고 주행가능 거리도 501㎞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