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고객사의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를 맞추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 만난 재생에너지 수요처(한국 대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에선 재생에너지 구하기 힘들다'는 토로가 새로운 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원하는 주된 이유는 EU(유럽연합) 등의 규제와 더불어 유럽·미국 대형 고객사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 완성차 기업이나 구글·애플처럼 탄소배출 없는 에너지원으로 전력을 조달하겠다고 밝힌 기업들이 자사의 공급망에 속한 기업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서다.
2022년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한국 제조기업 중 대기업의 29%, 중견기업의 10%가 고객사로부터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2년 전 조사인 만큼 현재는 비중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고객사로부터 오는 압박이 더 거세다"는 또 다른 한국 대기업 관계자의 말에서 이런 압력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절박한 수요자들이 있음에도 공급이 부족한 게 자연환경 상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추정한 한국의 재생에너지 자원 잠재량(신재생에너지 백서, 2020)은 연 926TWh(테라와트시)다. 지리적 요인과 기술 수준, 규제 등을 감안한 가장 보수적인 수치임에도 한국 연간 발전량 594TWh을 크게 웃돈다.
재생에너지 공급을 원하는 발전사업자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수급 불일치의 핵심 원인은 제도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수조원 규모의 대(對)한국 투자를 계획했던 한 외국계 재생에너지 개발업체는 "다음 단계의 인허가가 예상보다 훨씬 지연되는 등 불확실성이 길어지며 한국시장에 대한 관망세가 짙어지는 분위기"라 했다.
전력망 보강처럼 민간이 손 쓸 수 없는 영역도 문제다. 재생에너지 업계는 "지금은 (발전단지를) 만들어도 계통(전력망)이 없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사단법인 넥스트에 따르면 추가 재생에너지 발전을 수용하기 위해 수요가 몰린 수도권과 재생에너지 자원이 집중된 남부 지역 사이에 32GW의 송전 용량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개선은 수년째 제자리다. 전력수요 및 재생에너지 발전량 급증을 대비하기 위한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전력망특별법)은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정부 주도 계획입지와 인허가 절차의 책임소재를 규정한 '해상풍력보급활성화에 관한 특별법(해상풍력특별법)' 역시 3년여에 걸친 이해당사자 간의 의견 조율에도 21대 국회에선 제정 기회를 놓쳤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주 보고서에서 폭염에 따른 냉방 수요 등으로 인해 올해 전세계 전력수요 증가율이 2007년 후 가장 큰 4%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공지능(AI)발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봤다. 2025년까지 늘어나는 전세계 전력수요 절반을 태양광이 충족할 것이라고도 했다. 청정에너지 기반 구축에 속도를 내는 대만을 미국 IT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입지로 낙점했다는 뉴스가 이어지는 지금, 더는 늦지 않게 한국의 막힌 입법 관문이 열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