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막히자 AI로…새 활로 뚫는 'K동박'

기성훈 기자
2025.11.12 06:21
/그래픽=최헌정

전기차(EV) 캐즘(Chasm·일시적 수요둔화)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박 기업들이 AI(인공지능) 특수에서 활로를 찾는다. 회로박, 글라스기판(유리기판) 등 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에 따른 고부가 제품을 새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국내 유일 회로박 공장인 익산공장의 전지박 라인을 AI용 회로박 라인으로 전환한다. 회로박이란 구리로 만든 얇은 박(동박)이다. 동박이 인쇄회로기판(PCB)에 활용되면 회로박, 이차전지 음극 집전체로 쓰이면 전지박이다.

AI가속기와 스위치, 라우터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AI용 회로박 제품은 글로벌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AI용 회로박은 AI 데이터센터의 초고속 데이터 처리를 위해 동박의 신호전송 손실이 낮은 물성이 요구되며 전 세계적으로도 극소수의 회사만 제조가 가능한 제품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국내외 고객사들의 회로박 증설 요청을 받고 있으며 이미 내년 주문량이 생산 가능 규모를 넘어선 상황이다. 이에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AI용 회로박 생산 규모를 내년에는 기존 대비 1.7배, 2028년에는 5.7배까지 확대해 고객사의 수요를 선점할 계획이다.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이사는 최근 진행된 3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2028년에는 회로박 매출액이 전기차용 전지박 매출액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AI용 고부가 회로박 등 제품 포트폴리오 전환을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에 신속히 대응하고 미래 성장기회를 빠르게 선점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SKC의 글라스기판 모습./사진제공=SKC

SKC는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 핵심 소재인 '글라스기판(유리기판)'에 팔을 걷었다. AI 반도체의 성능 향상과 소형화에 필수적인 기술로 평가받는 글라스기판은 기존 플라스틱 기판보다 열에 강하고 표면이 매끄럽고 미세회로 구현이 쉬워 '차세대 기판'으로 평가된다. AI 데이터센터에 글라스기판을 적용하면 센터의 면적과 전력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대규모 데이터 처리가 필수인 AI 시대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의 급격한 성장에 힘입어 고순도 글라스기판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은 글로벌 유리기판 시장 규모가 2023년 71억달러(약 10조4000억원)에서 2028년 84억달러(약 12조3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는 2026~2027년을 기술 상용화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SKC는 70% 지분을 보유한 미국 법인 앱솔릭스를 통해 글라스기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SKC는 세계 최초로 미국 조지아주에 연산 1만2000㎡ 규모 양산 공장을 준공하고 첫 양산 샘플을 제작했다. 현재 고객사 인증 프로세스를 진행 중이다. SKC는 내년을 목표로 세계 최초 글라스기판 상업화를 추진 중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해 7월 글라스기판 공장을 둘러보고 '반도체 제조의 게임 체인저'로 지목했다. 시장 상황에 따라 SKC는 글라스기판 2공장 건설도 검토할 예정이다. SKC 관계자는 "조지아 공장 생산 샘플에 대해 긍정적인 시뮬레이션 평가를 확인했다"면서 "글라스기판 사업 가속화를 위해 추가 투자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가운데)이 지난 2024년 7월 조지아주 커빙턴시에 위치한 세계 최초 글라스기판 양산 공장을 둘러보며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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