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짬을 내 서울 명동거리를 걸으면 한국이 아닌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거리 곳곳에 한글보다 더 많은 중국어 간판과 유창한 중국어로 손님을 끌어모으는 점원들, 여기저기서 들리는 중국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중국여행을 간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백화점은 더 하다.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에 들어서면 한글을 찾아보기 힘들다.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중국어가 한글 안내판을 대신한 지 오래다. 잠깐 멈추고 상품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점원의 웃음과 함께 중국어가 귓전에 날아든다. 롯데백화점 9층에 위치한 면세점은 아예 한국어 실종이다.
명동거리와 주변이 '서울 속 중국'이 된 것은 그만큼 중국인 의존도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중국인이 장사를 떠받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한국을 찾은 전체 외국인관광객 810만 명 가운데 중국인관광객이 381만명으로 47.0%를 차지하고, 이들이 대부분 명동을 방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명동의 중국화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 같은 중국인 의존도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최근 사드(THH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한중 관계가 미묘하게 변하는 상황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드는 조짐이 보인다는 소리도 들린다. 아직 큰 변화는 없지만 일부 여행사에서 벌써부터 중국인의 한국 방문 예약이 취소되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해 농사를 짓는 천수답과 같은 현재의 중국인 상대 판매전략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유통업계에 팽배하다. 중국인의 발걸음이 끊어진 뒤 중국화된 거리를 내국인으로 채우기도 힘들 것이다.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끊은 한국인들이 중국인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명동 일대를 걸으면서 최근 여름휴가 때 방문했던 일본 도쿄를 떠올렸다. 지하철과 유명 관광지, 중심가 상점에 한국어와 중국어 표지판은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거리에서 외국어로 고객을 호객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상점이나 음식점에서 손짓과 발짓을 써가며 의사소통하려 애썼지만 사람사는 동네라 그런지 통할 것은 다 통했고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라는 나름의 만족감에 웃음을 짓기도 했다.
여행의 묘미는 낯설음에 있다. 떠나기 전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설레임, 도착한 뒤 좌충우돌하면서 겪는 성취감, 이국적인 풍경 등이 몸에 배일 때 만족감이 비로소 다가온다.
도쿄 여행에서 기억나는 것은 상점과 식당에서 들리는 유창한 한국어가 아니었다. 짧은 일본어와 손짓, 눈빛 등으로 길을 묻고 목적을 달성할 때의 기분 좋은 상쾌함이었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백화점·면세점은 물론 명동거리의 노점상까지도 '진정한 한국' 알리기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