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하지말라면…그냥 정기세일 안하면 됩니다. 뒷일은 정부가 책임지겠죠."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백화점들의 판촉비관련 지침 개정에 나선 것과 관련, 한 백화점 관계자에게 대책을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한마디로 "하지 말라니 안하면 된다"는 것이다. 간단명료한 이 대답에는 그러나 공정위 규제에 대한 업계의 냉소와 반감이 담겨있다.
공정위는 정기세일시 고객에 할인해준 상품가격의 절반을 백화점이 부담하는 것을 골자로 판촉비 지침을 개정하기로 했다. 정기세일은 백화점이 업체의 팔을 꺾어 강제로 참여시키는 행사라는 인식이 자리한다.
백화점들은 어안이 벙벙해한다. 그동안 백화점 입점 수수료나 반품 조항에 대한 불만이 없진 않았지만 정기세일에 대해서는 대부분 협력사들이 별다른 문제제기를 안해왔다. 그런데 수십년간 이뤄져온 백화점과 입점사의 공생 매커니즘이 갑작스런 공정위의 지침 하나에 붕괴위기에 빠진 것이다.
백화점 업계는 공정위 지침을 따를 바에야 차라리 정기세일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영업이익이 25%나 줄어드니 차라리 세일을 안하고 손실을 줄이는 것은 상식이다.
정작 공정위 조치로 수혜자가 되어야할 입점업체도 우려한다. 온라인 공세에 쪼그라드는 백화점 사정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세일을 안하면 고객이 줄고 입점업체의 매출감소도 당연한 수순이다. 공정위는 "개별업체들이 각자 세일행사를 하면 된다"지만 업체들은 "백화점이 홍보를 안하는데 손님이 오겠느냐, 순진한 소리"라고 일축한다.
더 큰 걱정은 백화점에서 계속 장사할 수 있을지다. 백화점이 규제를 피해 명품, 노세일 브랜드로 상품군을 재편하면 중소 브랜드 협력사의 백화점 입점문턱은 더욱 높아진다. 비싼 수수료를 내고라도 백화점에 입점하는 것은 '백화점 브랜드'라는 간판효과를 누리려는 것인데 이마저 가로막히는 셈이다. 소비자들도 "정기세일을 안하면 백화점을 뭐하러 가느냐"는 반응 일색이다. 공정위 규제로 이득보는 게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법대로 하는 것일 뿐이라며 요지부동이다.
안타까운 것은 정부 내 누구도 공정위의 독주를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당장 정부가 소비촉진을 위해 기획한 내달 '코리아세일페스타'도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정기세일이 사라지면 소비는 더욱 얼어붙게 된다. 유통산업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도 이를 우려해 공정위를 찾았지만 법령개정 사항이라는 단호한 입장에 빈손으로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정부 규제는 신중해야한다. 사전에 경제와 산업,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정교하게 평가하는 게 기본이다. 공정위 규제는 그런 면에서 다소 성급해보인다. 대통령은 연일 기업경쟁력 강화와 경기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를 부르짖는데 정부 한 쪽에서는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생겨나니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