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한식을 찾기 어렵단 VIP 고객들의 의견을 듣고 시작했습니다. 늘 먹어 왔기에 정작 몰랐던 우리의 귀한 음식과 문화를 연구하고, 이를 미래 유산으로 계승하고 싶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신세계 한식연구소에서 만난 한희정 신세계백화점 한식연구소장(팀장)은 업계 유일의 전통 한식 연구·개발 조직을 만든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신세계백화점 F&B(식음료) 바이어로 근무하던 한 소장은 2021년부터 한식연구소 운영을 총괄해오고 있다.
한식연구소는 신세계가 청담동에서 운영하는 편집숍 '분더샵 청담' 건물에 위치했다. 이 건물 외곽 직원 출입구로 들어가 지하 식자재 보관소를 거쳐 전용 엘리베이터로 4층에 올라가니 90여평의 공간에 주방과 고급스러운 한식 식기들로 채워진 응접실과 사무실이 나타났다.
현재 한식연구소엔 한 팀장과 전문 셰프, MD(상품기획자) 인력까지 총 7명이 근무한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있는 '발효곳간(한식 그로서리)', '자주한상(한식 다이닝)'을 비롯해 최근 오픈한 본점 더 헤리티지 '디저트살롱'에서 선보인 수백가지의 한식 메뉴와 차, 다과 등이 모두 이곳에서 테스트를 거쳤다. 이날(20일)도 미슐랭2스타 출신인 헤드셰프 최은미 수석 연구원을 비롯한 전문 셰프들이 주방에서 식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한 소장은 "모든 메뉴의 시식은 연구소 자체 평가는 물론 바이어와 전문가, 고객 등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며 "전통 음식 연구가와 메뉴 개발을 협업하면서 내부 셰프의 감각을 키워가고, 음식 패키지까지 한국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식연구소가 처음 개발한 메뉴는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반찬 정기구독 서비스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장보기 트렌드가 바뀌고 집밥을 찾는 고객이 늘면서 상차림을 위한 반찬 구매 수요가 늘어났다. 믿을 수 있는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매주 식단을 제안하는 구독 서비스에 고객들의 지갑을 열었다. 3~4인 가족이 한 달에 8번 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을 제공하는 4회 구독권은 22만원이란 가격에도 월 2억원의 매출을 올릴 만큼 수요가 많다.
VIP 한정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저변을 넓히면서 사업 영업도 확대됐다. 우선 전통으로 계승된 각 지역의 장류와 김치·젓갈·장아찌 등 명인들이 만든 향토 반찬, 토종 식재료와 전통주 등을 판매하는 프리미엄 식료품 전문 매장 '발효곳간'이 2021년 처음 문을 열었다. 지난해 강남점 하우스오브신세계에 둥지를 튼 '자주한상'은 한식연구소가 자체 블랜딩한 쌀과 제철 식재료로 만든 반상과 전통주 등을 판매하는 음식점이다. 올해 4월 영업을 시작한 '디저트살롱'은 선조들이 즐겨 먹던 유명 한국 차와 병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메뉴를 내놨다. 이 가게들이 판매하는 밥과 차는 한식연구소에서 오랜 기간 블렌딩(조합)과 시식 과정을 거친 것이다.
실제로 발효곳간에서 판매하는 블렌딩쌀의 경우 모든 국산 품종과 일본 우수 품종 쌀을 각기 다른 종류와 비율로 조합하고 밥을 지어 시식하는 과정을 1년여간 진행했다. 최고 인기 상품인 티백 육수와 차(茶)도 인공 가미나 가향을 하지 않고 원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디저트살롱에서 팔고 있는 화려하고 독특한 모양의 떡과 한과는 한식연구소 세프들이 전래 음식 연구가 서명한 선생에게 2년 이상 제조법을 전수받은 것이다. 신세계의 상징인 붉은 꽃을 연상시키는 홍화차, 조선 시대 차 블랜딩 기법을 적용한 본차 등은 18대 매월당 '로해' 김동현 티마스터가 셰프들과 함께 개발했다.
한식연구소는 앞으로 '발효곳간'과 '자주한상', '디저트살롱' 등을 통해 신규 메뉴를 지속적으로 개발한단 계획이다. 특히 발효곳간에서 판매 중인 인기 상품은 간편식으로 다양화하고, 고객 수요가 늘어나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신규 매장을 추가 출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 소장은 "한식은 가깝고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느낀다"며 "숙련된 셰프들이 제철 식재료와 명인의 재료법을 살리기 위해 함께 배우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한식연구소 같은 전문 연구조직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