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생활비와 공과금, 자녀 학원비 등을 내지 못하고 있다. 회사의 건강보험료가 미납돼 생계비 대출도 제한된 절박한 상황이다."
기업회생을 추진 중인 대형마트 홈플러스 직원들이 최대 주주 MBK파트너스와 민주노총 마트노조의 극한 갈등 속에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체 직원의 약 87%인 직원 협의체(한마음협의회)와 일반노조는 "일단 회사부터 살리자"며 기업회생안을 추진하자는 입장이지만 마트노조는 회생이 아닌 청산(파산) 절차라고 반대하면서 MBK의 추가 지원을 촉구한다.
2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직원 2만여명의 급여를 미지급한 홈플러스는 올해 설 상여금은 물론 2월 급여 지급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설 상여금은 명절 7~10일 이전에 지급했는데, 긴급운영자금(DIP) 대출이 승인되지 않으면 이번에도 체납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2월 급여 지급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가 매달 고정적으로 필요한 운영비는 인건비 약 650억원과 점포 임대료 300억원, 세금 200억원 등을 포함해 1200억원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홈플러스는 현재 1월 급여 미지급분 외에도 약 1400억원대의 지방세와 전기료 등을 체납 중이다.
홈플러스 경영진은 버틸 시간이 없다며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와 국책은행 산업은행에 DIP 대출 3000억원을 각자 1000억원씩 분담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메리츠와 산은은 난색을 보인다. 이대로 가면 정상적인 점포 운영이 불가능해서다. 실제로 홈플러스 납품 물량은 평소의 40~50% 수준으로 파악된다. 본점을 비롯한 주요 점포 매대는 곳곳이 비어있고 PB(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채워져 있다.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는 지난달 국회 토론회에서 DIP 대출 3000억원과 기업형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예상 매각 대금 3000억원을 합쳐 6000억원의 긴급 유동성 확보 계획을 밝혔다. 이와 함께 현재 추진 중인 주요 점포 매각 대금이 더해지면 약 1년간 정상 운영을 통해 회생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단 입장이다.
직원 협의회와 일반노조는 이 계획에 동의했지만 마트노조는 반대 입장을 고수한다. 마트노조는 "DIP 3000억원은 미래 수익을 끌어다 이자로 바치는 꼴"이라며 "대출이 아닌 MBK의 직접 출자 및 물품 대금 담보 등 자구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SSM 분리 매각과 점포 추가 폐점은 '규모의 경제'를 포기한 사실상의 청산 수순이란 게 마트노조의 주장이다.
노사 합의가 지연되자 사측은 일단 인력 감축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월급 3개월분 지급' 조건으로 오는 6일까지 차부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받고 있다. 현장직을 제외한 본사 인력은 1300여명인데, 사측이 만약 10억원을 퇴직금으로 부담하면 100여명의 인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홈플러스가 파산하면 대규모 실직 사태가 우려되는 만큼 수습책을 논의 중이다. 다만 이에 앞서 MBK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단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DIP 대출 보증 등 간접적인 지원이 아닌 MBK 김병주 회장의 사재 출연이 중요하단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김 회장과 MBK는 주주가치 침해, 배임 등을 이유로 이런 제안을 사실상 거부해왔다.
업계에선 노사 양측이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이번 사태가 수습 국면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